"두개골이 훼손된 채 싸늘하게 식어 있는 시신은 12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것으로 보였다. 카메라는 병원 마룻바닥에 널브러진 수많은 시신들 사이에 놓여 있는 이 아이의 시신 위에 잠시 멈춰섰다." 영국의 일간지 타임스는 24일 카타르의 알-자지라 위성방송이 "고통스러운 장면을 내 보내 죄송하다"는 앵커 멘트와 함께 연합군의 바스라 공습에 의해 희생된 이라크 어린이들의 처참한 모습들을 가감없이 방영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미국과 영국의 TV 방송들이 진격하는 미.영 연합군의 승전보를 전달하는 데 열을 올리는 동안 알-자지라는 이라크 쪽에서 본 전쟁의 전개상황을 상세하게 보도하는 것은 물론, 이라크인들이 겪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전체 아랍 세계에 분노의 불을 댕기고 있다고 전했다. 아랍 세계는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에는 미국의 CNN과 같은 서방 방송 채널들을 통해 전쟁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근 급부상한 아랍 위성방송들을 통해 아랍인의 시각에서 이번 이라크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 타임스는 알-자지라를 비롯한 아랍 위성방송들의 등장은 아랍인의 입장에 기운 보도는 물론 보도 내용의 신속성과 정확성에서도 자주 서방 매체들을 압도함으로써 전쟁보도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7년전 등장한 알-자지라는 이번 전쟁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이라크 정부로부터 무제한적인 `현장 접근권'을 보장받음으로써 서방의 방송매체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독점적인' 화면들을 내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알-자지라가 다른 아랍권의 국영 매체들처럼 지도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는데 열을 올리는 친정부적인 매체는 결코 아니다. 알-자지라는 아랍의 독재정권들을 끊임없이 비판함으로써 카타르 정부의 `외교적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수많은 기자들이 비판적인 보도로 체포, 추방되고 있고 심지어 사형판결을 받은 기자들이 있을 정도로 매서운 필봉을 휘두르고 있다. 이런 보도 관행으로 아랍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알-자지라는 미국에 대해서도 정곡을 찌르는 보도로 왕왕 전쟁 지휘부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이 "모든 전폭기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안전하기 귀환했다"고 말하고 있을 때 알-자지라는 이라크군이 티그리스 강변에서 미군 전폭기 조종사를 체포하고 있는 모습을 방영했다. 알-자지라의 바그다드 특파원은 "미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1일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이라크 제 2의 도시 바스라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미 중부사령부가 이라크 육군 51사단 사령관 칼레드 알-하셰미 준장이 사단 병력 전체를 이끌고 투항했다고 발표하는 동안 알-자지라 특파원은 "미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알-하셰미 준장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알-자지르를 통해 방영되는 이라크인들의 고통과 저항은 `형제 나라'인 아랍 국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략에 반대하는 전세계 이슬람 교도와 아랍인들에게 깊은 공명을 자아내고 있다. 알-자지라 이외에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부다비 텔레비전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아라비야 방송 등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전시위를 연일 보도함으로써 이번 전쟁의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타임스는 이라크 정부가 알-자지라 방송에만 바스라와 모술에서의 취재를 허용한 것은 아랍 세계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서 이 방송이 갖는 역할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