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 이라크 전쟁반대입장을 고수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라크 위기가 터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 대항해 끝까지 반전논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의문시됐던 것이 사실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에 최후통첩을 내린뒤에도 "이라크 전쟁은 정당성이 없다"고 분명히 말해 자신의 반전 입장을 지켜냈다. 이때문에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유엔 승인없이, 자국을 공격하지 않은 국가에대해 전쟁을 벌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시라크 대통령의 반전 입장이 이라크 전쟁 방지에 성공할 가능성은 현재로서 거의 없어 보이나 힘을 앞세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한 측면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그는 이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평화와 반전 수호자이자 미국의 견제세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프랑스의 상징인 샤를 드 골 전대통령에 버금가는 인기를누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라크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67-74%의 인기도를얻고 있으며 국민의 85% 가량이 그의 반전 입장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그가 이라크전쟁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분명히한 최근, 지난달보다 10% 포인트 가량 올라가면서 절정에 달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지난해 실시된 대선에서 재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외모와 언변덕에 40년 정치인생 동안 대통령, 총리, 파리시장, 각료, 의원 등 최고위직을 섭렵한 운좋은 정치인으로 주로 통했다. 정당 창설자, 18년간의 파리시장, 2번의 총리직 등 오랜 정치 경력 뒤의 크고작은 부패 스캔들로부터 시달림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은 대선에서 극우파인 장-마리 르펜의 '돌풍'을 잠재우기위한 국민후보로 나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것을 계기로 '국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국내 정치와 행정은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에게 맡겨놓고 이라크 위기, 유럽연합(EU) 확대 등 굵직한 외교, 국방 사안에 몰두했다. 급기야는 이라크 전쟁 반대 기수로 떠오르면서 올해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랑스 국민조차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가능성을 실감하지 못했으나 이라크전쟁이 발생하지 않으면 시라크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시라크 대통령이 '직업 정치꾼'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기수'로 탈바꿈한 데 대해 엘리제궁 측근들조차 그가 변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한 측근은 "시라크 대통령이 과거 능력있고 멋진 기수였다"며 "이제는 이 기수가 이념까지 갖췄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이 반전 논리로 국내외에서 전에 없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이는 佛-美관계 악화가 가시화되면 여지없이 무너질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비판도없지 않다. 한 정치 평론가는 시라크 대통령이 현재 고층 빌딩에서 추락하고 있는 중이라며그가 "지금까지는 너무 좋아"(jusqu'a present c'est bien)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