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22일부터 시작될 한국 등 아시아 3개국 순방 중에 대북 식량지원 재개를 공식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은 '북 핵 문제'가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11월 세계식량기구(WFP)를 통한 대북 식량 지원 중단 방침을 밝힌 바 있어 파월 장관의 식량 지원 재개 시사발언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 공세를 강화하면서도 식량지원은 인도주의적인 문제로 접근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파월 장관은 21일 아시아 순방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식량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 중단을 결정한 것은 분명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지난해 11월14일 2002년 12월분 대북 중유 제공중단을 결정한 직후 미국은 대북 식량 지원 중단을 결정했고 당시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식량 분배의 투명성 문제에 대한 시비와 논란이 비등했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비상용 비축식량을 북한에 지원했다는 우익세력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와타누키 다미스케(綿寬民輔) 외교협회 회장이 식량 지원 논란의 책임을 지고 12월4일 사임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식량 지원 중단 조치가 북한의 비밀 핵 개발 계획과는 무관하며 예산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대북 식량 외교의 중대한 방향전환이었다. 잭 프리처드 대북교섭담당 대사의 방북이 추진되던 지난해 6월7일 미 국제개발처(AID)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정책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이를 호의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핵 사태 이후 미국과 일본이 대북 지원식량의 분배 투명성을 시비하며 잇달아 지원 중단을 결정하자 북한측의 태도도 돌변한다. 북한 외무성대변인이 지난해 12월15일 "정치적 조건이 붙은 인도지원은 절대로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히고 조선중앙통신이 12월23일 "미국의 조건부 대북식량지원방침은 인도주의 정신의 유린"이라고 비난한 것은 식량지원의 '정치성'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후 미국은 북 핵 개발 포기를 앞세워 지난해 말부터 북한의 식량과 경화(달러), 무기 수출 등에 항목별 맞춤 봉쇄(tailored containment)를 추진했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대응 강도를 계속 높였다. 이 와중에 식량 지원 중단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나오기 시작했고 지난 8일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북핵사태 이후 대북 식량지원을 중단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설을 통해 지적했다. 결국 파월 장관이 대북 식량 지원 재개의 뜻을 밝힌 것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대북 식량지원 부족을 경고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따른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파월 장관이 "북한에 있어서 식량은 매우 절실하다"며 미국은 "식량을 정치적무기로 사용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밝힌다고 말한 것은 그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기자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