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高 교장으로 가는 '이현구 서울대 前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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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건 대학교수나 고등학교 교사나 마찬가지인데 왜들 이상하게 여기는지...".
고등학교 교장으로 가기 위해 서울대를 떠나기로 한 이현구(李鉉求.60 총장대행 역임)교수의 말이다.
이교수가 부임할 학교는 전주 상산고등학교(이사장 홍성대).
미국에선 92년 베노 슈미츠 예일대 총장이 유치원부터 고교과정까지 총괄하는 에디슨학교 교장으로 전직한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 대학교수 그것도 학장과 부총장을 지낸 중진교수가 고등학교로 옮기는 것은 이교수가 처음이다.
더욱이 이교수의 경우 정년이 5년이나 남았고 명예교수직 또한 보장돼 있는 상황이다.
서울대 수학과와 미국 코네티컷대(박사)를 나와 70년 이후 서울대 자연대학장 수리과학연구소장을 지낸 국내 수학계의 권위자로 우리 사회의 통념을 깬 이교수를 만나 심경과 계획을 들어봤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 같다.
무슨 계기가 있는지.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 이사장과 대학 선후배 사이다.
홍 이사장이 기존 교육체계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보다 자율적으로 키울 수 있는 자립형 사립고를 운영하겠다고 해 찬성했는데 뜻밖에 직접 맡아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어려운 문제였으나 '가슴 속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함께 지닌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결정했다."
-주위의 반대가 심했을 듯하다.
정년도 많이 남았고.
"아내와 노모 모두 왜 사서 고생하느냐며 말렸다.
학교 안에서도 찬반 양론이 극렬하게 갈린다.
그렇지만 '서울대 교수가 무슨 짓(?)'이라는 식의 얘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상산고등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홍 이사장이 80년 설립했다.
그동안 일반고교로 운영됐으나 내년부터 자립형 사립고가 된다.
정부 보조 없이 등록금(80%)과 재단지원금(20% 이상)만으로 운영하는 대신 학생 선발 및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갖게 된다.
고교 3년 동안 이수해야 하는 2백20여개 단위 중 국민공통 기본과정 56단위 외에는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만큼 획일화된 교육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입시교육과 인성교육의 조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수학 특성화 고교로 육성한다는 얘기가 있다.
"수학은 모든 논리적 사고의 기본이 되는 만큼 문과 학생들에게도 미적분을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계산하는 기술보다 사물을 논리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또 수학을 잘하려면 우선 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겠다.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수학을 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어와 영어교육은 어떻게 해나갈 작정인지.
"읽기와 쓰기는 모든 교육의 첫걸음이다.
졸업할 때까지 최소한 50권은 읽도록 하겠다는 학교 지침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독후감 등을 통해 쓰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글을 이해했는지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목을 달게 하는 것이다.
학부형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상회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 교사가 가르치는 게 필요하다.
예비입학생에게 겨울 동안 읽어 두면 좋을 책과 영어회화 기본문장 등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직접 강의를 할 생각인가.
"가능한 한 교실에 들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의심하는 방법부터 가르치고 싶다.
처음에는 생소하겠지만 훈련이 되면 괜찮을 것이다.
학교 운영문제는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는 만큼 걱정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고교 교사들에게도 교환교수제 같은 형식을 도입해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담=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