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잇따라 가계대출 규제 조치를 내놓고 있는데 대해 금융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현재의 가계대출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보고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더이상 늘리지 못하도록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반면 은행들은 가계대출의 심각성에 반론을 제기한다. 특히 정부의 직접적인 가계대출 규제에 대해선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에선 정부의 과도한 가계대출 억제가 경기침체를 불러 오히려 개인부실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 심각성에 대한 시각 차 정부는 지금의 가계대출이 경제위기를 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지금의 추세라면 GDP(국내총생산)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올해말쯤 미국과 비슷한 75%까지 갈 것"이라며 "97년말 기업대출 부실로 외환위기가 왔다면 현재는 가계대출 부실이 제2의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약 4백조원으로 추정되는 가계대출이 금리상승이나 부동산값 하락 등으로 급격히 부실화될 경우 은행 건전성에 치명타를 입혀 경제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것이란게 정부의 걱정이다. 특히 올들어 10개월간 가계대출이 57조원이나 증가한 것은 우려할 만한 속도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은행과 상당수 금융전문가들은 정부와 견해를 달리한다. 한 은행 임원은 "은행들이 올들어 가계대출에 다소 과당경쟁을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며 대출을 늘려 왔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규제에 나서야 할만큼 위험하진 않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도 "현재 가계대출 규모는 한국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앞으로도 주택가격이 급락하거나 금리가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가계대출이 부실화돼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특히 대부분의 외국 투자은행들이 한국의 가계대출 우려를 지나친 기우(杞憂)로 보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골드만삭스와 CSFB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가계대출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통제가능한 범위 내"라고 밝혔다. 도이치방크도 "미국과 유럽에 비해선 한국의 가계대출이 양호한 수준"이라며 "최근의 우려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모건스탠리 정도만이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세는 유례없는 것으로 신용버블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 규제방식도 논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방식에 대해서는 논쟁이 더욱 뜨겁다. 정부는 가계대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 때까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은행을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김석동 금감위 감독정책 1국장은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한 은행들의 자산운용 실태를 앞으로 집중 점검할 것"이라며 "문제가 있는 은행에 대해선 현장 점검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나는 은행에 대해선 임직원을 문책하는 초강경책도 검토중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계대출 축소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뒤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정부의 최근 가계대출 규제는 은행에 대한 영업방해 수준"이라며 "대출의 담보비율까지 정부가 정해 주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임원은 "국내은행들도 이제 리스크 관리 능력이 향상돼 가계대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알아서 줄여 나갈 것"이라며 "그런데도 정부가 담보인정비율은 물론 개별적인 영업방식까지 규제하는 것은 지나친 관치"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이건범 연구위원은 "실제 위험여부를 판단하고 전략을 조절하는 것은 개별 은행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획일적인 가계대출 규제로 은행들의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면 은행들의 자산운용이 비효율화 되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인실 금융센터소장도 "정부의 급격한 가계대출 억제는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경기하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이에 따라 가계부실이 더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