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역. 미도파쪽 출입구 계단으로 올라오니 한약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눈을 감고도 한약시장에 도착했음을 알 것 같다. 이 일대 7만여평은 국내 최대의 한약재시장인 서울약령시(옛 경동약령시). 한약상 한약방 한의원 등 1천여개 업소가 몰려 있다. 이곳은 전국에서 유통되는 한약재의 70%를 소화하는 한약재의 메카. 다른 곳보다 20∼40% 저렴한 가격에 한약재를 살 수 있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역에서 손님이 모인다. 일요일인 지난 10일 오후 2시. 약령시는 초겨울 환절기를 맞아 보약을 지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흥정하는 소리가 골목마다 요란하고 향긋한 한약 냄새가 진동한다. 가게 앞에는 당귀 천궁 숙지황 영지 등 다양한 한약재가 수북이 쌓여 있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십전대보탕이나 쌍화탕을 찾는 손님이 많죠.재료만 파는 경우도 있고 먹기 좋게 1회용 팩으로 만들어 드리기도 하죠." 점원의 목소리엔 신바람이 묻어 있다. 현재 약령시 한약도매점에서 2백50g(3재) 단위로 팔고 있는 십전대보탕 재료 가격은 7만∼10만원선. 사용하는 약재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 정도면 한 사람이 한 달 이상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최근 약령시 한약 처방의 새 경향은 '퓨전'. 같은 십전대보탕이나 쌍화탕이라도 맛과 효험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재료를 첨가하는 사례가 많다. 한약 소매업을 하는 한 상인은 "젊은 손님일수록 까다롭게 약재를 고른다"고 말한다. 약령시는 한동안 중국산 약재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시장 주변 노점상들이 중국산 약재를 국산으로 속여 팔거나 섞어 파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 상인 연합체인 서울약령시협회가 소비자보호센터를 설치하고 수시로 순찰을 도는 등 품질 관리에 신경을 쓰면서 상황은 나아졌다. 협회 임대산 국장은 "정식 점포들은 시청으로부터 수시로 검사를 받기 때문에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이지 않는다"며 "다소 비싸더라도 정식 점포에서 사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약령시는 최근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에 첨단시설을 갖춘 한방 테마상가들이 점포를 분양하고 있다. 현재 공급 중인 상가는 한솔동의보감 한방천하 동의보감타워 등 3곳. 상가마다 7백∼1천개에 달하는 점포를 쏟아내기 때문에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는 2004년 이후엔 한약 관련 점포수가 지금의 3∼4배로 늘어난다. 한방 테마상가들이 재래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미지수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한 상인은 "구멍가게 옆에 슈퍼마켓이 들어선다는데 좋아할 구멍가게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또 "다른 상인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의원에 근무하는 한 한의사는 "약령시 상인들 중 한방상가에 투자한 사람은 소수"라며 "대다수 입주 예정자들은 한약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부동산 업자들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