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서 차로 2시간여 거리에 있는 뉴저지주 중부에 있는 벨연구소(Bell Labs)는 미국 과학계의 자랑이다.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민간 연구소로 미국 통신기술의 보고로 통한다. 벨연구소 근무경험은 우리나라에서도 알아주는 경력이다. 양승택 전 정통부장관,이용경 KT사장 등이 이 연구소 출신이다. 전세계 과학도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벨연구소를 갖고 있는 회사는 바로 루슨트테크놀로지.미국 장거리전화회사인 AT&T에서 분사한 세계 최대 통신장비메이커다. 3년 전 주가가 65달러까지 오를 때만 해도 '루슨트답다'는 말은 첨단 기술과 막강한 자금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말뜻은 크게 바뀌었다. 대형백화점인 시어스로벅이 고객들에게 지나치게 좋은 조건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다 재무구조가 엉망이 되자 미국 언론들은 곧바로 '제2의 루슨트'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현금사정이 좋았던 루슨트가 은행처럼 마구잡이로 고객들에게 자금을 빌려주면서 자기제품을 쓰게 하다가 결국 빚투성이가 된 것을 꼬집는 말이다. 루슨트는 2000년 한해에만 대출이 2억2천6백만달러에서 18억달러로 늘어났을 정도다. 65달러 하던 주가는 지난 11일 55센트로 떨어졌다. 뉴욕증권거래소 규정에는 30일 연속 1달러 밑에서 거래되면 자동 상장폐지케 돼 있다. 때문에 회사측은 상장폐지를 막기 위한 고육책을 발표해야만 했다. 10∼20주를 한주로 만드는 주식병합을 통해 실제가치의 변화없이 주당 가격만 15∼25달러 수준으로 높인다는 편법이다. 그마저 시장이 기다려줄지 의문이다. 벨사우스 버라이즌 등 AT&T에서 함께 분사한 '4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물건을 사주고,10만명 넘는 직원을 3만5천명으로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하고 있지만 성과는 아직 '별로'다. 23일(현지시간) 발표된 3분기(7∼9월) 매출은 전년동기보다 절반 아래로 줄었고,이익은 '10분기 연속 손실'이란 기록을 이어 나갔다. 이제 '루슨트답다'는 말은 흥청망청하는 경영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으로 경제교과서에 수록될 것 같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