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과격단체들이 외국인 등 187명의 목숨을 앗아간 발리 폭탄 테러의 배후로 의심받으면서 이들 단체의 실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체 인구 2억1천만명 가운데 90%가 무슬림으로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과격 세력은 겉으로는 이슬람 색채가 짙으나 본질은 특정 정치세력과 깊숙이연관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과격세력이 급속히 확대된 것은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무더기 도산하면서 실업자가 대거 길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수하르토정권이 붕괴된 지난 98년부터다. 각종 이슬람단체에 가입하면 사회적 발언권이 강화되고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데다가 대부분의 경우 가족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매력 때문에 일자리를 찾지못하던 젊은이들이 98년 이후 앞다퉈 이슬람 전사로 지원한 것이다. 알-카에다는 작년 9.11테러 이후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정보 수집 및 감시능력이 대폭 강화된데 반해 무슬림 단체의 행동이 자유롭고 치안역량이 허약한 인도네시아 토착 세력과 손을 잡고 근거지를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리 폭발사건과 관련해 미국과 싱가포르, 호주를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용의선상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지목받고 있는 단체는 이슬람 성직자 아부 바카르 바시르(64)가 이끄는 제마 이슬라미아(JI)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비롯한 각국 정보기관들은 동남아시아에 이슬람 공동체국가 건설을 목표로 발족된 JI가 알-카에다와 연계돼 각종 테러를 준비해온 것으로의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작년 말 JI가 자국내에서 호주 대사관을 비롯한 몇몇 서방 목표물에대한 공격을 모의한 혐의로 조직원 32명을 검거, 바시르의 처벌을 요구했으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주 미국 관리를 인용, 바시르가 지난 달23일 자카르타 소재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에 대한 폭파 공격을 명령하고 미국 공관직원의 가정집 폭파를 시도한 증거가 있다고 보도했다. 바시르가 이끄는 인도네시아무자히딘협의회(MMI) 산하 라스카르 지하드도 발리테러 배후의 용의선상에 올라있다. 족자카르타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단체는 지난 2000년 4월 기독교에 대한 지하드(聖戰)를 선포, 무장요원 3천여명을 말루쿠로 파견했으며 이후 유혈사태가 악화돼지금까지 모두 6천여명이 숨지고 난민 수 십만명이 발생했다. 이 단체는 또 작년 9.11사건 이후 반미감정이 고조될 당시 중부 자바 솔로에서미국인 추방을 목표로 호텔 등을 수색, 안전을 우려한 서방 관광객 수천명이 인도네시아 여행을 취소하기도 했다. 경찰은 테러세력에 미온적이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의식해 금년에 자파르 우마르 탈립 라스카르 지하드 사령관을 유혈 종교분쟁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했다가 얼마뒤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석방했다. 함자 하즈 부통령은 당시 수라바야에서 체포된 탈립이 자카르타로 압송되자마자 자카르타 지방경찰청을 찾아가 그를 단독으로 만나 장기간 대화를 나눠 라스카르지하드가 이슬람계 정당들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지난 80년 가루다항공 소속 민항기를 공중 납치해 태국으로 끌고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코만도지하드(성전사령부)의 지도부는 권력의 비호 아래 조직을 이끌었던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이 군재직 시절 절친했던 동료 장성 출신의 알리 무르토포가 코만도지하드를 설립, 정권에 위협을 가하던 이슬람계 정치단체들에 대한 국민적불신을 조장하기 위해 각종 테러 및 납치 공작을 꾸몄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과격 단체는 히즈불라로 식민통치를 하던일본군 특수정보부대 `베판'이 2차대전 종전 무렵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는 임무를띤 이슬람 단체를 설립한 것이 탄생 배경이다. 베판은 당시 무슬림 청년 500명을 훈련시켰고 이들이 자체적으로 산하 조직들을육성했으며 일부는 48-62년 사이에 다룰 이슬람(이슬람 가족) 운동을 전개했다가 실패로 끝났다. 최근 몇 년 간 가장 눈길을 끈 무장단체는 이슬람방어전선(FPI)이다. FPI는 평소 이슬람 율법 수호를 명분으로 내걸고 술집과 디스코텍, 윤락업소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악명을 날렸다. 각목과 낫 등으로 무장한 흰옷 차림의 FPI 요원들은 수 백명씩 몰려다니며 주로주말 심야에 유흥업소를 급습해 내부 집기와 유리창, 술병 등을 닥치는대로 깨고 손님들을 폭행했으나 경찰에 체포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들 단체들은 서로 다른 정치권 및 군부와 연계돼 별도로 활동했으나 작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이슬람의 공동적을 향해 상호 협력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연대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달 25일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몰려든 무장 이슬람 요원 1천 500명이 중부자바 수라카타에 집결해 미국 규탄집회를 갖고 워싱턴 당국을 상대로 지하드 전개를천명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당시 FPI와 라스카르 지하드, JI 등 각종 단체 지도자들은 수라카타 이슬람학교에 모여 알-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는바시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목표로 집회를 개최했다. 해외 정보기관들은 이들 단체가 알-카에다와 연계해 발리 테러사건을 감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이를 뒷받침할만한 물증을 확보하지못한데다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도 없어 이들 단체에 쏠리고 있는 의혹의 진상이 단시간에 규명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대일특파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