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과 장대환 국무총리서리 국회인준이 잇따라 부결된 후 새 국무총리 임명을 둘러싼 정국의 표류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은 '세번째' 총리서리로 김석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명했다. 이미 두번에 걸쳐 총리인준이 무산되다보니 국정 현안은 산적해 있어 대통령이 국무총리직을 겸임하겠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었다. 그 동안 국무총리가 '헌법적으로'규정돼 있는 국무위원과 행정 각부의 장에 대한 제청권을 '사실상'포기하고 일인지하(一人之下)의 '대독총리'로 그 역할을 한정해온 것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볼멘소리가 구차한 측면도 없지 않으나,장기간 계속돼 온 총리부재가 비정상적 국정상황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국정공백'상황의 한 가운데는 인사청문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인사청문회 통과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느니,혹은 "혹독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은 70∼80년대를 살아온 한국의 지도층 인사 중에는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왔다. 또 청문회가 후보자의 국정수행능력에 대한 검증은 하지 않고,도덕성 검증에만 열을 올린다고 비판하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두번에 걸친 인사청문회는 '실패'라기보다는 '성공'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록 걸출한 청문회 스타가 배출되지 않았고 또 청문회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여야간 '힘겨루기'모습도 현저했지만,문제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순기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말한다면,인사청문회란 고위공직자로서의 업무수행능력,정치지도자로서의 도덕적 권위 등을 검증하는 제도이다. 물론 이상과 실제는 다르다. '부실한' 청문회도 있을 수 있고,'준비 안된' 청문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검증과정을 거칠 때 인사자체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승인을 확보하게 되고,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가 없을 때는 고위공직자 임명이나 선출 이전에 직무 수행능력이나 도덕성을 공개적으로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 오로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과 결정으로 인사가 이뤄지다보니,말로는 '인사가 만사'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부적절한 인사가 많았다. 현 정부 들어와 발생한 적지않은 인사파문은 대표적 사례다. 인사청문회가 이런 부정적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제도임은 명백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청문회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없다'는 속담을 상기시킬 만큼 대통령이 지명한 공직후보자를 피의자 조사하듯 속속들이 파헤쳐 어떻게 해서든 흠결을 찾아내려는 절차는 아니다. 실상 인사청문회의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있다면,객관적인 검증보다도 집권세력과 야당세력간의 정치적 대결로 비쳐진다는 점일 것이다. 야당은 정략적 이유로 '유능한' 공직후보자에 대한 흠집내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점을 청와대는 문제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청문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민주제도에도 해당되는 사항이므로 특기할 만한 것은 아니다. 또 설령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밀(J S Mill)이 주장한 바와 같이 야당의 이른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의 역할은 국정운영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이 '데블스 애드버킷'은 가톨릭에서 특출한 사람을 성인(聖人)반열에 올릴 때 그 공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악역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는 공연히 성인의 탁월한 행적과 인품을 의심해 흠결을 끄집어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흠집내기를 극복했을 때 성인으로서의 가치는 빛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공직후보자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과 모함이 난무한다고 해도,'사필귀정(事必歸正)'의 준칙처럼 그것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공직자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은 더욱 반짝거릴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나름대로 비싼 기회비용을 치르며 총리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기준과 관행을 구축했다. 이제 수해복구·대선관리와 같은 국정이 산적한 현 시점에서 김석수 지명자가 지금까지 구축된 객관적이고 엄격한 검증과정을 통과해 국정표류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