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인준안 표결이 이뤄진 31일 국회 본회의. 박관용(朴寬用) 의장이 '부결'을 발표하자 정작 의원들도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듯 본회의장은 한동안 술렁거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떠나면서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 후보였던 장 지명자 인준안 부결에 따른 정치적 책임 논란과 향후 정치적 파장을 의식해 서로 상대당에 책임을 떠넘기는 데 바빴다. 민주당 정장선(鄭長善) 의원은 "민주당에서 일부 이탈이 있었어도 극소수였을것"이라며 "한나라당과 자민련에서 전혀 안 찍은 것 같다"고 말했고, 강성구(姜成求)의원은 "임기가 얼마 안 남은 대통령이 이렇게 망가져서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의원은 "한나라당이 자유투표로 결정한 것은 가결시켜주겠다는 뜻이었는데 민주당이 단결했다면 당연히 가결됐을 것"이라며 "이번 결과로볼 때 민주당의 운명이 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특위 민주당측 간사로 가결을 권고했던 강운태(姜雲太) 의원은 착잡한표정으로 "각자 의원의 양심에 따라 표결한 만큼 존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높은 기대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상 자유투표로 치러진 이날 표결 결과가 과거와는 달라진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국회 관계자는 "자유투표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며 "이제는 과거처럼 국회를 운영하는 것은 안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준안 표결이 이뤄진 이날 본회의는 3당의 의원총회가 지연되면서 예정시각보다 1시간20여분 늦게 열렸으나 투표는15분여만에 순조롭게 완료됐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자유투표 방침을 정했고, 민주당 역시 인준안을 통과시켜주는게 좋겠다는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의 의견을 권고하는 `느슨한 권고적 당론' 형태로 표결에 임했기 때문인지 이한동(李漢東) 전임 총리 인준안 표결때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은 없었다. 한나라당에서 김용학 강인섭 김만제 의원 등 3명, 민주당에서 설 훈 김희선 김경천 최영희 장재식 이원성 의원 등 6명, 자민련에서 김종필 정진석 조희욱 송광호이완구 의원 등 5명과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표결에 불참했지만, 가결되리라는 전망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본회의에 앞서 열린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의원총회에서 인준반대목소리가 높아 이날의 '이변'이 사실상 예고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민주당은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의총 전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했고, 한나라당도 의총에서 찬반논리가 팽팽히 부딪혔다. 각당은 당내 반대의견을 의식해 자유투표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민주당도 당론투표를 `강요'하지 못하고 `권고적 당론투표'를 선택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부결에 따른 후유증을 덮어쓸 수 있다'면서 인준해줘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으나 대세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 주재로 열린 의총에서 박원홍(朴源弘) 의원은 "부결시 국정혼란보다는 무능한 총리의 해가 더 크다"면서 인준에 반대했고, 청문특위 위원인심재철(沈在哲) 의원도 "여성계를 의식해 본질을 놓쳐선 안된다"고 부결 입장을 취했다. 특히 김홍신(金洪信) 의원은 장 지명자에 대해 `우먼(여성) DJ' 등의 표현을 써가며 반대논리를 폈다. 그러나 김부겸(金富謙) 의원은 "여성표를 의식해야 한다는 논리는 천박하지만부결이 될 경우 부담이 된다"며 찬성론을 폈고, 홍준표(洪準杓) 의원도 "개인적으론반대지만 부결시 국정공백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거대야당의 오만으로 선전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홍 의원은 "이 정부가 장 지명자를 내세운 것은 괴벨스적 수법"이라며 장 지명자 관련 의혹으로 인해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가 `유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점을 우려했다. 하지만 안택수(安澤秀) 의원이 "국정혼란의 책임을 뒤집어 쓴다는 논리에는 찬성할 수 없다"며 다시 반대당론을 주장하고 나서자 이주영(李柱榮) 의원이 자유투표제를 제안했으며, 서 대표는 "양심과 인사에 관한 것이니 자유투표하는 게 좋다"면서 자유투표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도 한화갑(韓和甲) 대표 주재로 의원총회를 열었으나 김성호(金成鎬)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의 반대의견이 많아 `당론투표'를 관철하려는 지도부의 애를 태웠다. 특히 김 의원과 정범구(鄭範九) 의원 등 `새벽 21' 소속 의원들은 "장 지명자는부동산 투기 의혹, 학력 허위기재 문제, 아들 국적문제 등 문제점이 많다"면서 반대를 주장했고, 새벽21 소속이 아닌 배기운(裵奇雲) 의원도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그러나 여성의원인 이미경(李美卿) 의원은 장 지명자의 문제점이 많이 드러났다면서도 "그래도 찬성해줘야 한다"는 `비판적 찬성'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견이 갈리자 한 대표와 정대철(鄭大哲)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은 "의원들 개개인이 알아서 투표하지만 원활한 국정운영과 최초 여성 총리의 의미를 살려 가급적지지해달라"고 당부했으나 결과적으로 `역부족'을 드러냈다. 자민련도 김학원(金學元) 총무 주재로 소속 의원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원총회를 열어 자유투표를 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김 총무는 "민주당으로부터 협조 요청이 왔으나 의원간 찬반이 엇갈려 한쪽으로당론을 모으기 어렵다고 판단, 자유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의총에선 김종호(金宗鎬) 정우택(鄭宇澤) 의원이 강하게 반대 표결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회 교육위는 당초 본회의 직후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상대로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검정 논란을 집중 추궁할 예정이었으나, 인준안 부결후 각당의 의원총회가 열리자 회의를 하루 연기했다. gija007@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강원 맹찬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