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팀이 제가 가꾼 잔디 위에서 준결승전을 치른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지난달 31일 전세계 62억 인구의 이목이 집중됐던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1년째 이 곳의 잔디를 끌어안고 살아온 박원규 대리(35·삼성에버랜드)의 소망이다. 박 대리는 12년째 잔디만을 다뤄온 잔디 전문가. 지난 2000년 삼성에버랜드가 상암 구장의 조경과 잔디 조성을 맡게 되면서 상암경기장과 인연을 맺었다. 주경기장에 잔디가 깔린 작년 5월부터는 아예 출퇴근을 포기하다시피하고 이곳의 잔디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아들 종훈(5)이와 딸 혜빈(4)이가 이제는 TV에서 경기장만 보면 "아빠 회사다!"라고 소리치더군요"라며 "함께 놀아주지 못한 게 미안하지만 세계적 행사에 참여한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 대리가 돌보는 잔디는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등을 합쳐 여의도공원의 절반 정도 되는 약 3천평의 땅에 깔려있다. "당초 기후 적응력이 뛰어난 한국산 들잔디를 심을 예정이었는데 선수들의 부상을 염려한 FIFA측의 요구로 양잔디를 심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상암경기장에 깔린 잔디는 '켄터키블루 글래스'라는 품종.질감이 좋고 색상은 뛰어나지만 관리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건조한 날엔 하루에 소방차 트럭으로 23대 정도(90t)의 물을 뿌려줘야 합니다. 작년 5월부터 연말까지 8개월 동안 물값만 5천만원이나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갓난 아기를 키우듯이 정성스레 가꿔온 잔디가 개막식을 통해 전세계에 데뷔했을 때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는 그는 그래도 초조하다고 털어놨다. 한국팀이 준결승까지 오르지 못한다면 이번 월드컵 기간 한 게임도 상암구장을 이용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박 대리는 "16강까지 간다면 준결승도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희망섞인 전망을 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에는 물기가 어린 잔디가 유리하다'는 말을 했다고 기억하는 그는 한국팀이 준결승에 오르게 되면 경기전날 물을 듬뿍 주는 것으로 일조를 할 예정이라며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아이들과 경기장에서 공을 꼭 한번 차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