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공부할 때 악기를 연주하면서 나름대로 생활의 균형을 찾고 긴장을 푸는 후배가 있었다. 우리 세대만 해도 악기를 배울 만한 여유가 없었던 까닭에 '정말 대단한 자산을 가졌구나'라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늘 복잡한 문제와 씨름해야 하는 생활 속에서 과도한 긴장감을 풀고 균형을 잡아 나가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시를 가까이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독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학창시절 이후 시를 가까이 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바꿔 보자. 생활이 고단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들이 풀리지 않을 때 시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 세계로 들어가 보자. 휴식과 에너지를 얻고 다시 힘차게 시작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시절이야 이런 일은 사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그리고 지적인 면에서 충전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면 이따금 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오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실용적인 면에서도 감성을 풍부하게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직장에선 상사로서 당신의 감성 뱅크가 든든하게 채워져 있다면 조직이나 가정은 잘 돌아갈 것이다. 이 난에서 시집을 소개하는 일은 처음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들도 세월과 함께 변화한다. '여행길에서'(박우사)라는 시집에 실린 '흐르는 삶만이'란 시를 보자. '구름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오늘도 흐르는 것만이 나를 살게 하네. 다른 사람이 던지는 칭찬의 말도 이런 저런 비난의 말도 이것이 낳은 기쁨과 슬픔도 어서어서 흘러가라. 흐르는 세월 흐르는 마음 흐르는 사람들. 진정 흐르는 삶만이 나를 길들이네' 토요일 귀가길에 서점의 시 코너를 한번 둘러보라. 아마도 촉촉히 가슴 속에 스며드는 시 구절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감성을 채우는 일이 반드시 세월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유년기의 기회들은 놓쳐 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길은 있다. 그것은 바로 시를 자신의 곁에 불러들이는 일이다. < 공병호경영연구소장 gong@go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