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식 하루 전인 30일 오전 11시30분.


구제역 파동으로 마음고생이 심한 탓인지 김동태 농림부 장관은 수척한 얼굴로 기자간담회에 나타났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19일 이후 12일간 구제역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마련됐다.


따라서 기자들 사이에선 김 장관이 구제역 종료를 선언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왔다.


김 장관은 그러나 이런 전망을 보기좋게 뒤엎었다.


그는 간담회 내내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며 "잠복기간이 길게는 2주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6월2∼3일 이전에는 안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이처럼 신중했던 이유는 불과 5시간 후인 오후 4시30분께 밝혀졌다.


비상방역대책 상황실의 한 관계자가 기자실에 나타나 "용인 백암면에서 구제역 증상을 보이는 돼지들이 추가 발견돼 예방차원에서 전부 도살키로 했다"며 "별일 아니니 기자들만 알고 있으라"고 말했다.


농림부는 지난24일 축산업계 관계자 등과 축산방역회의를 갖고 구제역 확산을 초기에 방지하기 위해 발생농가 인근에 대한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수의사들에게 현장시찰 도중 구제역으로 의심되는 돼지를 발견할 경우 즉시 도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


그러나 이 행동지침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었다.


신속한 지침임은 분명했지만 '일처리 후'에 대한 행동요령이 없었다.


한마디로 도살하고 나면 끝이라는 것.


종전처럼 양성여부를 가릴 정밀검사를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다보니 언론에 보도될 리도 없다.


다행히 이번 '백암면 건'은 기자들의 요구에 의해 뒤늦게 실시한 정밀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돼 '소동'으로 끝이 났다.


월드컵 개막 바로 전날 언론에서 굳이 구제역을 들먹여 좋을게 뭐 있냐는 농림부의 불평도 이해는 간다.


또 김 장관이 이번 구제역 건을 모르고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는 농림부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농림부가 예방처분이란 목적으로 마련한 행동요령이 진정한 예방보다는 오히려 국민들을 기만하는데 이용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쉬쉬하다 자칫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농림부도 알았으면 한다.


임상택 사회부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