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회북면 회인리 작은 농촌마을에 자리잡은 회인초등학교. 24일 오전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들로 둘러싸인 운동장에 들어서자 릴레이 경주 체육수업이 한창이다. "야! 지선이, 더 빨리 뛰어,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달음박질하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전재규 선생(52)의 표정이 아이들처럼 천진스럽다. 그는 얼마 전까지 신문사 '편집국장님'이었다. 지난 78년 대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동양일보로 자리를 옮긴 뒤 편집국장을 끝으로 22년간의 언론계 생활을 접었다. 청주교대 출신인 그는 대학시절 기자가 꿈이었지만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교단에 서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퇴직 후 1년여 동안 고시공부하듯 초등학교 교사 임용시험 준비를 해 늦게 꿈을 이뤘습니다." 그는 1백50명 모집에 2백72명이 응시한 임용시험에서 당당히 21등으로 합격했다. 그의 전직(轉職)을 놓고 주위에서 한동안 말도 많았다. "'신문사 편집국장까지 지낸 사람이 초등학교 평교사를 하느냐'는 수근거림 정도는 일찍이 각오하고 있었기에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고 전 선생은 담담히 말했다. 지방신문 편집국장까지 지냈던 그가 평교사로 부임하자 학교는 물론 교육청까지 소동(?)이 벌어졌다. 그를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하지만 일주일 먼저 임용된 막내 여동생뻘 젊은 여선생에게도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하고 아이들에게 열성을 다하자 주위 사람들도 차츰 거부감을 거뒀다. 이 학교 정광지 교장선생은 "뒤늦게라도 천직을 찾아 매일 매일을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과 같이 근무하는게 기분좋다"고 말했다. 전 선생이 담임을 맡고 있는 5학년 김상돈군은 스승의 날 글짓기에서 "기자생활을 하시면서 체득한 세상 이야기와 해외 취재 경험담을 공부에 곁들여 들려주시는 선생님이 정말 멋지다"고 썼다. "늦깎이라 교감의 꿈도 못꾸는 만큼 오직 가르치는 데만 전념할 수 있어 편하다"는 그는 인성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운동회 플래카드를 쓸 때도 신문 제목달듯 하는 등 신문쟁이 때를 못 벗었다"며 겸연쩍어하는 전 선생은 "아이들 숙제 검사는 안해도 일기 검사는 꼭하는 것도 일간신문 만들던 버릇이 남은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보은=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