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외환은행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는 정문수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요즘 심기가 영 편치않다.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교수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 사외이사 겸직 등으로 물의를 빚고 중도 퇴임한 다음날인 지난 10일에도 정 교수는 외환은행 임시이사회에 참석했지만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최근 한국증권거래소가 지난 3월말까지 주총을 마친 상장사 6백24개의 사외이사 등록현황을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 1천4백91명중 대학 교수는 전체의 17%인 2백54명에 달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국.공.사립 교원들은 '영리활동'인 사외이사 활동을 해서는 안된다. 결국 정 교수를 비롯 2백50명이 넘는 교수들이 법을 어기고 있는 셈. 정 교수는 "대학 총장은 모르지만 일반 교수들까지 사외이사를 못하게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씁쓸해 했다. 사외이사를 필요로 하는 재계도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수를 사외이사로 초빙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사외이사를 둘러싼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큰데다 대학내부에서도 사외이사로 많이 초빙되는 상경계 교수등과 그렇지 못한 인문계등의 시각이 판이하고 학생들의 시각도 달라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 교수들 사외이사 겸직 허용 입장 엇갈려 =요즘 교수사회에서는 사외이사 겸직이 '뜨거운 감자'다. 경영대 공대 등 실천.응용학문 분야 교수들은 '영리활동 금지'라는 케케묵은 이유로 사외이사 겸직을 막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명백한 영리활동인 교수들의 벤처 창업은 적극 권장하면서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등 공익 기능이 있는 사외이사는 맡아서 안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입을 모은다.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교수들이 사외이사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이상한 '상아탑' 주의적인 발상"이라며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사외이사제도라는 창구를 통해 현실을 접해 학생들에게 더 현실감있는 교육을 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인문학 등 순수학문 분야의 일부 교수들은 사외이사 겸직에 부정적인 편이다.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깊이있는 강의를 하는게 교수의 본분"이라며 "현직 교수가 회사 경영전반을 꿰뚫고 있어야 하는 사외이사직을 맡다보면 연구와 강의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뒤늦게 나선 교육당국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에 대해 뚜렷한 입장 정리를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모습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수가 사외이사를 겸직할 수 있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면서도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시행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총장에게도 사외이사 겸직을 허용할지,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할지 등을 고려해 구체적인 방침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그러나 "교수 겸직 논란은 지난 2000년 송자 전 교육부장관이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실권주 인수등을 통해 억대의 시세차익을 올렸을 때부터 문제였다"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확한 방침도 세우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꼬집었다. ◆ 재계는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 환영 =현재 상장기업은 총 이사의 4분의 1 이상, 특히 금융회사와 자산 2조원이 넘는 대기업은 전체 이사의 절반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김석중 전경련 경제조사본부장은 "사외이사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데 현재 한국엔 전문인력 풀이 없다"며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을 불허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방실.홍성원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