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3:55
수정2006.04.02 13:58
경기도 양평군 대심리 "경애헌(景涯軒)".
집 앞으로는 남한강 줄기가 이 손에 잡힐 듯 굽이쳐 흘러간다.
이른 새벽이면 아스라이 피어난 물안개가 앞마당 느티마무를 스치며 집안으로 스며든다.
물안개가 걷히면 이내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집안 거실로 쏟아진다.
멀리 강건너에 늘어선 야산의 부드러운 능선도 숨김없이 드러나면서 영화속 풍경이 연출된다.
굳이 집이 들어서지 않았어도 편안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이같은 대지에 생각없이 집을 짓기다는게 오히려 죄스러울 정도다.
경애헌이 둥지를 틀 때는 가장 고민스런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주어진 천혜의 풍광을 그대로 살리면서 겸손하게 자리를 잡느라 건축가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집앞에 펼쳐진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되 막힘이 없도록 만들었다.
채움과 비움의 미학이 연출되도록 한 것.
이를 위해 강따라 조성된 언덕을 깍아내지않고 높이차를 원형대로 살리면서 집을 앉혔다.
이로인해 뒤쪽 도로쪽에서 들어오면 약간 낮으막히 1층이 자리잡았다.
집 중앙에는 커다란 중정(가운데를 비워둔 공간)을 만들어 집안을 비운게 이색적이다.
이 가운데 마당은 지붕을 덥지않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기운을 막지않고 그대로 잡아두기 위해서다.
집의 숨통처럼 비워진 공간에는 대나무 숲을 만들어 사철 푸른 자연의 생기가 머무르게 했다.
이 중정은 또 거실을 거쳐 흘러드는 남한강 풍광이 중정까지 끌어들여 싱싱한 기운과 만날 수 있게 꾸며진 계산된 공간이다.
치밀한 공간구성이 돋보인다.
자연향기가 머무르다 흘러가도록 한 비워둠의 공간은 중정에만 그치지않는다.
1층 부엌 뒤쪽과 욕실 옆자리 등 두 곳에 또 다른 정원이 들어서 있다.
이 곳 역시 천장을 막지않고 비바람이 그대로 들치게 했다.
자연상태 그대로 둔 것이다.
바닥에는 부드러운 자갈과 잔디로 마무리했다.
어쩌다 비라도 올라치면 자갈에 부딛치는 빗소리가 창틀사이로 스며들어 사람들을 감싼다.
1층 거실은 창문을 남김없이 터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광이 쏟아지게 구성됐다.
거실 앞쪽으로는 데크(툇마루)를 만들어 밖으로 통할 수 있게 짜여져있다.
음식냄새 묻어나는 부엌공간도 중정과 연결시켜 외부와의 접촉성을 높였다.
욕실쪽의 정원에서도 자연의 향기와 멋진 경관이 스며들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중정을 돌아 2층에 오르면 2개의 침실이 있다.
침실은 양쪽 모서리에 배치돼 있고 침실 중간에는 자갈이 깔린 데크가 정갈하게 놓여있다.
집을 둘러싼 그림같은 전원풍경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이로인해 1층 공간에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묻어난다.
이 집에서의 가장 핵심공간은 2층에 마련된 데크다.
로비 형태로 만들어진 이 데크는 건물 앞쪽으로 길게 빠져나온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집만이 누리는 천혜의 풍광을 좀더 가까이 만져보고 가슴속에 담아낼 수 있도록 하기위해 배려한 아이디어 공간이다.
이렇듯 경애헌은 집안 전체를 비우고 막고 또 한편으로 돌출시킨 다양한 형태로 공간이 구성됐다.
비록 작은 집안 공간이지만 변화무쌍한 공간변화를 줌으로써 생동감이 넘친다.
외관도 내부 공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시각적 혼란이 없이 정연한 느낌이 든다.
크고 작은 사각형의 조형요소만으로 오밀조밀하게 엮어놨기때문이다.
외부 마감은 무채색 노출콘크리트로 채웠다.
요란한 채색은 자칫 천연색 자연풍광을 해칠 수 있을 것이란 계산때문일 것이다.
경애원.한가족이 보듬고 살기에는 너무 아까운 풍광이 충만한 대지에 들어선 집이다.
그나마 무례하지않고 자연과 화합하려고 고민한 흔적이 있어 보기좋은 집이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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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메모
규모:대지면적-106평,연면적-62평,건축면적-40평,지상2층.
위치:경기도 양평군 대심리 구조-철근콘크리트조,
설계:환건축 송광섭(02)583-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