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후기의 대선사였던 초의(草衣)는 차(茶)에 매료돼 이를 널리 보급하는데 앞장섰던 다성(茶聖)으로 불린다. 그는 해남 일지암에서 수행을 하면서도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이라는 책을 써 우리 차의 색과 향기,맛 그리고 약효의 우수성을 설파했다.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추사 김정희 사이의 각별한 교분도 차로 인한 인연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우리나라에 차가 전래된 것은 1천3백여년전인 신라 선덕여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들어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차는 승려와 화랑들 사이에 성행했으며,차를 전담하는 다방(茶房)이라는 기관이 있을 정도였다. 이후 민간에 널리 보급되면서 차례와 시제를 지낼 때도 차를 사용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차는 일반으로부터 멀어졌다가 최근 차의 효용성이 다양하게 입증되면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차는 서양에서도 관심을 끌면서 국산차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차맛이 깊고 향기가 그윽해서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보성녹차'는 으뜸으로 꼽힌다. 차재배는 일교차가 크고 안개가 많아야 하는데,보성지역은 해발 2백?의 사질토양인데다 보성강과 주암호로 둘러싸여 안개바다를 이룬다. 국내 차의 40%를 생산하는 보성녹차가 국내 처음으로 '지리적 표시 특산물'1호로 등록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유럽의 스카치 위스키나 보르도 포도주처럼 지역 명품으로 발돋움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요즘 차잎채취가 한창인데 녹차라 해도 따는 시기에 따라 질과 가격이 천양지차다. 봄비에 백곡이 기름진다는 곡우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 딴 것을 우전차(雨前茶),곡우와 입하 사이는 세작(細雀),5월초순부터 6월 중순까지는 중작,그 이후는 대작이라고 한다. 어린 잎일수록 아미노산이 풍부해 차인들은 이를 더욱 선호한다. 녹차는 노화를 방지하고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차는 건강을 위해 마셔야겠지만,차 한잔에 깃들인 선인들의 예(禮)의 정신도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