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면 현금이 들어오니 돈버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오후에 일을 마치고 목욕 한 번 하면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져요. 이 맛에 하는 거죠." 지난 19일 서울역 앞에서 만난 택시운전 기사 김기선씨(59.신화여객 소속)는 기자가 차에 오르자마자 '택시운전 예찬론'을 늘어 놓는다. "오늘은 돈이 달라붙네요. 점심 시간 전인데도 사납금 7만9천원을 다 채웠거든요..." 손님이 있을 법하다며 노량진 쪽으로 핸들을 트는 그의 '감각'은 경력 5개월에 걸맞지 않게 수준급이다. "아저씨 여의도요!"라고 외치는 30대 여성을 태운 김씨. "황사도 없고 날씨가 아주 화창하네요"라며 백미러를 통해 눈인사를 건넨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서비스로 준비한 껌을 권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목적지에 손님을 내려준 뒤에도 그의 예찬론은 이어진다. "손님마다 사연이 있어요. 본의 아니게 '인생상담'까지 하고 나면 택시 일을 하는 게 자랑스러워요" 평생 택시 일만 해온 사람처럼 보이지만 김씨는 작년 8월까지만 해도 영풍금고 사장을 내리 세번이나 연임한 능력있는 CEO였다. 그는 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회사를 떠났다. "고령화시대에 살면서 인생 후반기 '평생직업'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자 미련없이 사표를 냈다는 김씨는 늙어서도 일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다 싶어 택시를 택했다. 김씨의 파격에 부하직원들은 의외로 담담했다. 영풍금고 영업부장은 "오래 전부터 회사를 그만두면 택시운전을 하겠다고 말해 놀라지 않았다"면서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보고 정말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인도 처음에는 냉담했지만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아들 김준호씨(29)는 "아버님의 용기가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원하던 일이었지만 처음엔 만만치 않았다. 사장 시절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만 탔던 그에게는 택시 수동기어부터 어색했다. 그는 "클러치를 많이 밟아서인지 발목이 아파 침까지 맞아야 했다"며 "몸무게가 한 달반 만에 7㎏이나 빠지기도 했다"고 초보 시절 고충을 들려줬다. 김씨는 힘들수록 이를 악물고 5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고 자랑했다. 신화여객 김동수 노조위원장은 "금고 사장을 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어서 동료기사들에게 모범이 된다"고 말했다. 김 기사의 꿈은 개인택시를 갖는 것. 그는 "택시기사를 하찮은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정작 기사 자신들도 창피해 하는 것 같다"며 "개인택시 기사가 택시를 몰고 가 골프를 쳐도 곁눈질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