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사생활 거론을 금기시하던 프랑스에서이번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후보 사생활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프랑스 정치평론가들은 1차 투표를 하루 앞둔 20일 이번 선거운동에서는 과거어느 때보다 부인, 자녀 등 후보의 사생활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며 이는 프랑스 정치 문화에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미국화라고 분석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 여사, 리오넬 조스팽 총리 부인 실비안아가친스키 여사 등 좌우파 두 주요 후보의 부인들은 이번 선거 초반부터 유권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귀족출신으로 남편의 외도를 묵인, 가정을 지키고 가톨릭신자로서 관용적 태도를 보였던 베르나데트 여사는 유럽 어느 나라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프랑스에서도현모양처의 전형으로 통해 보수 중산층으로부터 인기가 높다. 반면 실비안 여사는 철학교수이며 20세기 대표적인 사상가인 자크 데리다와 오랫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하다 그의 친자로 알려진 아들 다니엘을 데리고 조스팽 총리와 결혼한 인물로 지성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평가된다. 두 여성의 대조적인 면모로 인해 이번 선거는 시라크 대 조스팽이 아니라 한때두 여성의 인물 대결로 비춰질 정도였다. 후보의 자녀들은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나 역시 조금씩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베르나데트 여사는 지난해 펴낸 자서전적 저서 '대화'에서 딸 로랑스의 질병에대해 언급했으며 실비안 여사는 최근 시사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니엘에게 보여준조스팽의 후의에 고마워했다. 우파의 차세대 주자를 자칭하고 있는 프랑수아 베루 프랑스민주연합(UDF) 후보는 부인과 아들을 유세 연단에서 포옹해 가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우파 유권자들을공략하고자 했다. 극우파인 브뤼노 메그레 후보는 부인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공식 선거벽보로 사용해 부부 금실을 과시했다. 이번 선거 운동에서는 이같이 후보 사생활뿐 아니라 후보의 성격, 외모, 언변등도 중대 변수로 작용했다. 잘생긴 외모와 유창한 언변, 친근한 이미지의 시라크 대통령은 다른 어떤 후보보다 유권자들을 공략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으며 다소 찡그린 인상에다 세련되지 못한 모습의 조스팽 총리는 그만큼 고전해야 했다. 이에 대해 에티엔 슈바이스귀트 정치학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좌우 대결로 일관했던 프랑스 정치가 미국식 인물 대결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른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선거가 후보간 정책 공방이 실종된 채 "조스팽의 정직과 시라크의 친근함이 대결을 벌이는 인물 싸움으로 흘렀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보통사람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민주주의적 진보를 뜻하느냐"며 "그렇다하더라도 부인과 자식들을 노출시키는 것만이정치인들의 '인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