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두 사람이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놓고 정면 충돌, 경제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맞붙은 사람은 바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앨런 그린스펀 미국중앙은행총재 입니다. 그린스펀 총재도 경제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경제대통령'으로 불리고 있어 두 사람의 대결이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대통령을 등에 업어야 할 부시 대통령이 그와 등을 돌린 사안은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전문적인 이슈처럼 보이지만 에너지재벌 엔론의 부도과정에서 나타난 미국기업의 엉터리 회계관행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깊이 생각해볼 과제입니다.더구나 미국의 거의 모든 기업이 경영진이나 종업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고 있고 한국의 많은 기업들도 이를 채택하고 있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요지인즉 부시 대통령은 스톡옵션을 기업의 비용으로 보지 말자는 입장인 반면 그린스펀의장은 비용으로 간주해서 손익계산서 같은 재무제표에 정확하게 올리자는 쪽입니다.


스톡옵션을 기업의 비용으로 보는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묻겠지만 몇가지 통계를 보면 왜 ‘두 대통령’이 정반대편에 서 있는지 이해할 만도 합니다.


우선 야후(Yahoo)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이 회사는 지난 2000년 7천1백만달러의 순익을 올렸다고 보고했습니다.하지만 경영진의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간주했더라면 이 회사는 이익을 낸게 아니라 무려 13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야후만이 아니죠. 최대 인터넷장비업체인 시스코 시스템스도 같은 기간중 46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했지만 스톡옵션을 비용에 포함했더라면 27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게 됩니다. 스톡옵션의 회계처리에 따라 엄청나게 부풀려진 이익 거품이 단숨에 빠질수 있다는 예입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가 어떤 곳입니까. 당초 예상보다 주당 순익이 1센트나 2센트만 달라져도 주가가 널뛰기를 할 만큼 기업실적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그런데 순익이 줄고 늘어나는 차원을 넘어 흑자에서 적자로 바뀌는 상황이라면 주식시장이 어떻게 반응하고 그 회사 주식을 갖고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됐을지 감히 상상이 가겠죠.


그만큼 스톡옵션의 회계처리는 기업실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증권사인 베어스턴스는 지난 2000년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 5백지수에 들어가는 5백기업이 스톡옵션비용을 회계장부에 반영했을 경우 이익이 무려 8% 줄 것으로 분석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왜 갑자가 부상했을까요,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결말이 지어질까요.


문제의 발단은 엔론사태라고 할수 있습니다.에너지 재벌 엔론이 회계감사법인인 아더앤더슨과 함께 회계장부를 제멋대로 분칠함으로써 수많은 투자자와 직원들을 쪽박차게 만든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업의 회계장부를 믿을만하게 만들자는 논의가 급부상했습니다. 그런 노력의 하나로 칼 레빈(민주당,미시간주) 상원의원과 존 매케인(공화당,애리조나주) 의원은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계상토록 하는 법안을 추진,이 문제가 경제계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들 의원들의 발의가 이 문제를 부각시킨 첫 노력은 아닙니다.아주 오래전부터 스톡옵션의 회계처리가 문제로 지적돼왔습니다. 급기야 금융회계기준위원회(FASB)가 하나의 원칙을 마련했습니다.


그 원칙은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산정해서 재무제표의 주석으로 달거나 아니면 재무제표에 정식으로 반영하는 것을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기업의 자율에 맡겼죠.


기업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불문가지였죠. 미국의 S&P500지수에 들어가는 기업중에서는 보잉과 윈딕시등 2개만이 스톡옵션비용을 정식으로 재무제표에 반영하고 나머지는 모두 주석에 기재하는 편리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사실 일반투자자들에겐 회계장부의 많은 숫자들조차 생소합니다. 그 숫자밑에 있는 주석(Footnotes) 까지 눈여겨 본다는 것은 더 더욱 불가능합니다.주석으로 들어간 스톡옵션비용은 투자자들의 관심권을 벗어날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산정해서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유는 수익이 대폭 감소하기 때문이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반대논리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입니다.


첫째 비용으로 계산하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내용인데 간단하게 설명하죠.스톡옵션이 무엇입니까. 이미 정해진 가격(행사가격)으로 일정기간후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1백원에 1백주를 살 수 있는 권리를 받은 경영진이 있다고 합시다. 회사가 그 권리를 줄 시점에는 아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당장 현금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이죠.가치가 있는 권리를 주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회사의 부담으로종?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권리부여 시점에서는 비용이 아니라고 가정합시다.


그후 회사 주가가 계속 올라가 일정 시점에 그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행사(당초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사는 것)하면 비용이 발생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주식값이 2백원이 됐고 회사가 직접 시장에서 주식을 사 경영진에 준다고 가정하면 2백원짜리 주식을 당초 약속했던 1백원에 주는 셈이 되죠. 회사로선 그 차이인 1백원의 비용이 발생한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경영진이 언제 스톡옵션을 행사할지 불투명하고 행사 당시 주식가격이 얼마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년 스톡옵션 비용을 미리 추정해서 재무제표에 반영하기가 어렵다는게 대부분 기업들의 주장입니다.


둘째는 신생기업,특히 자본금이 적은 닷컴기업들의 불만입니다.이들은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스톡옵션인데 이를 비용으로 산정할 경우 스톡옵션 발행이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합니다. 오래전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 벤처기업집산지인 실리콘밸리에서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 였죠.


월급은 1원만 받고 스톡옵션을 선택한 김정태 전 주택은행장(국민은행장)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는 합니다.스톡옵션이 없었더라면 김 행장이 옛 주택은행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는데는 이처럼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린스펀 의장 같은 최고의 경제전문가가 비용처리를 옹호하는 것을 보면 그 문제라는 것도 별개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미국에서 투자귀재로 평가받는 워렌 버펫도 그린스펀을 적극 거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용계산이 어렵다는데 옵션가격을 산정하는 방법은 없는게 아닙니다.노벨상을 탄 숄즈교수의 이름이 들어간 블랙숄즈 모델이라는 것도 있어 가격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또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계상하면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억지논리로 볼수 있습니다. 정말 그 기업의 미래를 보고 경영을 해보겠다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런 사람을 데려다가 그 기업을 정말 제대로 꾸려가겠다는 의지가 있는 기업이라면 비용계상이 대수로운 일이 아닐수 있습니다.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할뿐 그 스톡옵션을 안주는게 아니니까 야망있는 경영자나 기업인에게 비용계상이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수는 없습니다.


스톡옵션비용처리를 둘러싼 이 같은 상반된 견해가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있는데 그렇다면 결론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 분위기라면 불가(不可)쪽입니다. 일찌감치 불가를 선언한 부시 대통령이 반대주장을 펴고 있는 그린스펀 의장보다 힘이 세게나 영향력이 커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불가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스톡옵션의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의 막강한 로비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시스코시스템스 AOL타임워너등 간판 기업의 회장들이 이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단체들과 화상회의를 가졌습니다.이들은 스톡옵션비용처리 관련 법안이 성안되는 것을 저지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각자 행동에 들어갔습니다.수많은 벤처기업들도 동조하고 있습니다.


재계의 파워인 돈,바로 정치인에게 주는 정치자금이 이들이 갖고 있는 무기입니다. 회계장부를 조작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으로 포장한 엔론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지 않은 정치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엔론의 레이 전 회장과 절친한 관계였던 부시 대통령도 엄청난 돈을 받았죠. 미국의 경우 정치자금이 모두 투명하게 관리되고 공개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비린내는 거의 나지 않습니다.하지만 정치자금을 준 후원자나 후원기업들을 위한 정치인들의 보답은 우리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모자라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계상할 경우 이익이 대폭 감소,주가가 폭락할 우려가 있는 기업들의 반대 로비가 관련 법안의 입법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부시가 그린스펀을 누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엔론사태와 그 후 계속 터지고 있는 미국기업들의 잘못된 회계관행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선의의 투자자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기업내용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회사 사정만을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갑작스런 부도로 수천명이 퇴직연금을 모두 날려버린 엔론 사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업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제공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스톡옵션의 비용처리 문제도 투자자들에게 기업내용을 더 정확하게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린스펀의장의 주장이 묻혀버리지 않길 바랍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