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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침에] 창호지에 국화를 수놓는 뜻은..柳岸津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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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가옥은 해마다 헌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 창호지로 문을 바른다. 본래 잘 만든 한지(韓紙)는 그 수명이 천년 이상 간다지만,일반가정에서 여러 모양의 문에 바르는 생활한지는 대체로 그 수명이 1년 정도였다. 1년쯤 문종이로 사용하면 대개는 헐어지고,자주 여닫느라 찢기기도 하고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또 지난 1년 동안 때와 그을음이 붙어서 다가오는 겨울 찬바람을 막기에는 아무래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해마다 월동준비로 가을볕이 좋은 날,한옥의 모든 문을 새 창호지로 발라서 겨울철 실내외 온도와 통풍의 유연성을 지혜롭게 활용했다. 창호문을 바를 때에는 돌쩌귀가 달린 면 이외의 3면에는 여분의 창호지를 문풍지로 달아 문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을 막았다. 이 문풍지는 밖의 바람에 그 떨림소리가 매우 그윽해 시인 묵객의 객수(客愁)와 그리움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렇게 넉넉한 문풍지로 난방과 통풍의 효과를 높이고,집안 분위기도 산뜻하고 따뜻하게 했다. 이처럼 해마다 묵은 문종이를 뜯어내고 물과 솔로 흔적을 깨끗이 지운 뒤 밀가루나 쌀가루로 묽은 풀을 쑤어 새 창호지를 붙일 때,멋과 아름다움을 위해 잎과 꽃으로 수를 놓았다. 손잡이인 문고리 근처는 문을 여닫느라 자주 손을 타기 때문에 아무리 잘 바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여닫아도 쉽게 찢어졌다. 그래서 창호지를 두 세겹 두껍게 발라 찢기는 것에 대처했는데,바로 이 부위에다 잎과 꽃을 수놓았다. 낮에는 햇볕에 어리비치는 잎이나 꽃,달밤에는 달빛,새벽과 저녁의 푸르스름한 하늘빛,혹은 비와 눈(雪)빛에도 무늬지는 모습을 감상했다. 선조들은 우아한 생활의 멋을 위해 방문을 창호지로 바르고 손잡이 부위에다 수를 놓을 때에도 남녀의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했다. 즉 남성가족의 생활공간인 사랑방과,여성가족의 생활공간인 안방의 문에 각기 다른 잎과 꽃을 수놓아 발랐다. 남성가족과 여성가족의 격조와 품위를 상징했으며 성(性) 역할에 따른 아동교육적인 효과도 함께 노렸다. 남성을 위한 사랑채의 여러 방문,즉 사랑방 문에는 댓잎을 따 한 줄기 대나무가 자라듯 수놓고 발라 대쪽 같은 선비의 기상과 지조, 대나무처럼 속이 터엉 빈 청빈(淸貧)을 표현했다. 그러므로 대나무는 남성을 상징하는 초목이기도 했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계산을 위한 산대(算竹)로 대나무를 사용했는데,그것은 재물을 계산할 때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욕심이 없음과,곁가지 없는 대나무처럼 딴마음 먹지 않고 정직하게 계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여성의 생활공간인 안방이나 안채의 여러 방문에는 국화의 꽃과 잎새를 따서 수놓아 발랐다. 이는 여인네의 오상고절(傲霜孤節)같은 정절과 격조를 상징했다. 온갖 꽃들이 속된 속성대로 다투어 뽐내는 봄 여름을 마다하고,다른 꽃들이 다 시들어버린 계절에 홀로 꽃을 피워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국화의 인내와 대범함을 지닌 여군자(女君者)의 모습으로 보았다. 하루에도 수없이 방 문을 여닫을 때마다 대쪽 지조와 청빈,국화꽃 같은 격조를 다듬었던 선조들이 정녕 지금 우리의 조상들이었을까? 어떻게 그 엄청난 액수의 부정과 비리,그토록 무수한 '게이트'의 당사자들과 그들의 철판심장이 청빈과 지조를 수시로 점검하며 살았던 조상들의 후손일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지금 우리 사회의 부패는 창호문이 사라진 주거생활 양식의 탓은 아닐까? 아무도 청빈이니,대쪽 지조니,오상고절의 격조를 닮으려 하기는커녕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비웃고 조롱하려 하니 이 또한 철판문짝을 여닫으며 살고 있는 우리의 주거생활 환경 탓이라 하랴? 우리 모두 철판으로 된 현관 문을 여닫으며 살기 때문에 철판심장이 돼버린 것은 아닐까? 창호문이 없으면 유리창에라도 댓잎과 국화꽃을 수놓아 보자. 사는 집만이 아니라 일하는 집무실의 유리창에라도,그도 아니면 책상위에 덮어둔 유리밑에라도 댓잎과 국화꽃을 수놓아,눈길 갈 때마다 속 비고 사심 없는 대쪽 지조와 청빈,국화꽃의 높은 격조를 느끼며 일할 수 있게…. aj@po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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