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그룹 비틀스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이 58세를 일기로 지난달 29일 유명을 달리하자 각국의 지도자들과 동료음악인,지인들의 추도가 잇따르고 있다. ▲각국 지도자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우리 세대는 비틀스와 함께 성장했다"면서 "비틀스의 음악과 밴드의 성격은 우리 삶의 배경이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해리슨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크게 슬퍼하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고 버킹엄궁이 밝혔다.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은 비틀스를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그룹의 하나로 평가하고 있으며 해리슨의 사망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잠겼다고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대변인이 전했다.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도 해리슨의 사망소식을 접하자 성명을 발표, "해리슨이 작곡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Here Comes The Sun)과 같은 명곡들이 내 기억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생존한 비틀스 멤버들= 비틀스의 드러머였던 링고 스타는 "해리슨은 가장 절친한 친구였으며 그를 오래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면서 아내 바버라와 함께 해리슨의 부인인 올리비아와 아들 다니에게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폴 매카트니도 그가 오랫동안 암과 투병해온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그는 사랑스럽고 매우 용감하며 유머감각이 넘치는 죽마고우였다"고 애도했다. 매카트니는 해리슨과 함께 했던 시절들을 회고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해리슨은 13살때 매카트니와 친구가 돼 존 레넌에게 소개돼 비틀스를 결성해 활동했으며 비틀스내에서 매카트니와 레넌사이에 불화가 발생할때마다 조정자 역할을 맡아왔다. 해리슨의 미망인 올리비아는 해리슨이 죽은 뒤 곧바로 추모예배를 올렸다. 해리슨의 임종을 지켜본 가족들은 해리슨이 죽으면서 "모든 것을 기다릴수 있지만 신에 대한 탐사만큼은 기다려서는 안된다"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밝혔다. ▲음악인및 지인들= 비틀스의 첫번째 매니저였던 앨런 윌리엄스는 해리슨이야 말로 비틀스의 구심점이었다고 평가했으며 비틀스 음반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조지 마틴 경은 해리슨이 부단히 노력해 (Something)같은 애창곡을 만든 싱어송 라이터였다고 평가했다. 전세계 음악인들을 모아 `라이브 에이드 (Live Aid)' 공연을 펼쳤던 밥 겔도프는 해리슨은 생전에 레넌과 매카트니의 천재성과 자신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지만 매우 잘해냈다고 평가하고 지난 1971년 방글라데시를 돕기위한 자전공연을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실수를 하지 말도록 당부하고 남의 목소리에도 귀를 잘기울이는 관대함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에서 해리슨과 기타화음을 맞추기도 했던 에릭 클랩튼은 해리슨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듯 논평을 회피했다. 봅 딜런과 로이 오비슨, 톰 페티,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제프 린,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나 마이클 잭슨등도 이제는 고인이 된 해리슨을 애도했다. 잭슨은 그의 죽음으로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뮤지션이며 가장 위대했던 한인간이 사라졌다"고 슬퍼했다. 비틀스의 많은 음반을 냈던 EMI레코드사도 해리슨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표시했다. 한편 힌두교에 기반을 둔 종교교단인 하레 크리슈타의 한 소식통은 해리슨이 이종교에 귀의할 당시인 60년대부터 알고 지내던 몇몇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문과 기도 속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워싱턴.런던 AP. AFP=연합뉴스) ycs@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