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 단국대 교수 honkorea@chollian.net > 올해 수능시험이 일관성을 잃었다는 점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수능시험의 난이도 변화는 그 동안 정부의 교육정책을 믿고 따라온 수험생들에게는 배신감을 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일관성 결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수능시험제도가 지난 몇년 사이에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돼왔다는 데 있다. 1998년 이후 쉬운 수능은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교육정책의 소산이다. 고등학교에서 자율학습과 모의고사를 폐지한 것도 이러한 정책의 소산이었다. 쉬운 수능은 고득점자를 양산시켜 수험생의 자부심과 기대를 높여 주었는지 몰라도 수능시험제도의 취지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 결과 수험생 자신은 물론 학교,학부모,사회 모두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겨주고 말았다.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쉬운 수능은 학생 선발에 필요한 변별력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신입생의 기초학력 저하를 초래해 대학교육을 더욱 부실하게 만들었고,신입생 또한 대학에서의 학업을 따라 가는데 애를 먹게 되었다. 고등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쉬운 수능은 안그래도 황폐화되어 가는 공교육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대학진학이 평소 실력보다 운에 더 좌우되니 학교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쉬운 수능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져 학생들의 장래를 꺾는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은 보다 질 높은 인력을 요구하는데 학생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은 오히려 그 수준이 저하되어 교육이 부실화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은 월급을 많이 주더라도 국내 대학보다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을 채용하려 하고,일부 학부모들은 일찌감치 자녀를 외국에 유학을 보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수능시험을 둘러싼 혼란은 인기영합주의적인 교육정책에 기인한다. 수능의 난이도가 올라가는데 비해 성적의 낙폭이 더 큰 이유는 교육정책이 공부를 안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하게 만든데도 그 원인이 있다. 정부가 이러한 정책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문제점을 인정하고,수능시험제도의 원칙을 명확하게 설정해 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능이 변별력을 확보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며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개선되어야 한다. 첫째,학생들의 전공선택이나 학력수준이 다양한만큼 선택수능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이 시험 과목 뿐 아니라 어떤 과목에 대해서는 시험의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시험을 어렵게 출제하면 변별력은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쓸모 없는 교육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시험 문제도 바꿔야 한다. 셋째,대학도 수능이 '좋은 시험'인지 평가할 수 있도록 해 정부가 수능시험의 질을 높이는데 보다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도록 유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