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릴로 프린시프,아돌프 히틀러,오사마 빈 라덴.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거나 장식할 인물들이다. 물론 빛나는 페이지는 아니다.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바퀴에 펑크를 냈다. 세계화는 돈과 사람 물건의 자유롭고 빠른 이동이다.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세계 경제의 성장속도도 빨라진다. 근대 이후 세계화 물결은 3번 일어났다. 첫 물결은 19세기말에 시작돼 1차대전으로 막을 내렸다. 두번째는 1920년대초 개시돼 2차대전으로 절명했다. 동서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초에 점화된 지금의 세번째 세계화는 '9·11테러'로 빈사지경이다. 프린시프,이 병약한 세르비아 대학생은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를 저격했다. 한달 후인 7월23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제1차 세계대전의 막이 오르자 첫번째 세계화의 막은 내려졌다. 히틀러,이 희대의 선동가는 1939년 9월1일 폴란드를 침공,2차대전을 일으켰다. 2차대전의 총성은 두번째 세계화에 울린 조종(弔鐘)이었다. 2차대전은 제국주의의 미명하에 약소국을 통합해 식민지화했던 두번째 세계화를 무덤으로 보냈다. 빈 라덴,3천만달러(약 3백90억원)의 현상금이 걸린 이 반미주의자는 2001년 9월11일 미국 심장부에 여객기를 내리 꽂았다. 역사상 가장 빠르고 강했던 세번째 세계화는 9·11테러로 치명상을 입고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해외출장을 억제하고,해외투자를 줄이거나 취소하고 있다. 해외 관광객과 국경을 넘나드는 근로자들도 줄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6%를 차지하는 국제무역도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이번 세계화는 묘지까지 가진 않을 것 같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3차대전으로 비화되지 않는 한 세계화의 부고장을 돌릴 필요는 없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세계화는 죽었다(globalization is dead)'고 선언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멈칫해 있을 뿐이다. 이정훈 전문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