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별도로 1조원의 신규자금을 투입, 회사채를 사들이기로 한 것은 고사 직전 상태인 회사채시장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물론 산은이 1조원을 푼다고 해서 회사채 발행과 유통이 완전 정상화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채권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심리를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기대된다. 채권 전문가들도 "미국 테러 발생 후 경기전망이 조금 더 불투명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채권시장에서 펀더멘털상의 큰 변화는 없다"며 "시장의 불안심리만 해소하더라도 시장안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 시장기능 상실한 시장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테러 사건 이후 회사채 시장이 시장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이윤규 한국투신증권 운용본부장은 "신용경색으로 회사채의 디폴트 위험이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BBB급 이하 회사채는 쳐다 보지 않는게 기관투자가들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 결과 투자부적격 등급(BB+ 이하) 회사채는 물론 투자등급인 BBB급까지도 발행 및 거래가 뚝 끊겼다. 연말까지(10∼12월) 만기가 돌아오는 BBB급 회사채 규모는 6조7천4백억원으로 전체 22조2천억원의 30%를 차지한다. 해당 기업은 시시각각 만기 상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9월에는 만기 상환금액이 발행액을 초과하는 회사채 순상환을 기록하기도 했다. ◇ 정부가 기댈 곳은 산은뿐 =금융 당국은 그동안 하반기 회사채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투신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에 음으로 양으로 회사채 매입을 종용해 왔다. 하지만 정작 이들 기관투자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최대 인수기관인 투신권은 올 들어 36조원이 유입됐지만 대부분 MMF(머니마켓펀드) 및 단기 채권형 상품에 집중돼 만기 2∼3년짜리 회사채를 사들일 형편이 못된다는 입장이다. 은행 역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금이 남아 돌지만 가계대출에만 열을 올릴 뿐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나 요주의 기업에 대한 대출은 아예 외면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최근 산은에 회사채를 추가 매입하도록 SOS를 쳤다. 국책은행을 동원해 일단 급한 불을 끄는 셈이다. ◇ 채권시장 마비, 해소될까 =산은은 BBB급 회사채 차환발행에 1조원을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이들은 엄연히 투자등급이지만 '회색지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물론 1조원으로 BBB급 회사채를 모두 감당하기는 어렵다. 다만 금융계는 산은의 회사채 매입 확대가 시장의 불안심리를 해소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령 특정 기업의 회사채 차환발행에 산은이 참여할 경우 다른 금융회사들도 덩달아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채권브로커는 "국책은행인 산은이 BBB급 회사채를 집중 인수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안심리가 어느 정도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도 "회사채 추가 인수의 1차적인 목적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막연한 불안심리를 해소하자는게 궁극적 목적"이라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