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오는 15일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다분히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우호 제스처'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사교과서 왜곡파문과 지난 8월13일 자신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인해 악화된 한일 관계를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개선해 보겠다며 그간 외교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 방한의사를 줄기차게 타진해 왔다. 히메노 쓰토무(姬野勉) 내각 부공보관은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에 대해 "지금까지 고이즈미 총리가 '하루라도 빨리 한국과 중국 정상을 만나 진솔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의지가 실현된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오는 20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이전에 한국과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며 'APEC 이전'한.중 방문에 집착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방한은 여러가지 고려가 반영된 '행차'로받아들여진다. 우선 고이즈미 총리는 다자간 회담인 APEC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어색한 조우'를 피하기 위해 이번 방한을 강력히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일 APEC 이전에 한국 방문이 실현되지 않을 경우, 고이즈미 총리는 APEC 회담에서 알파벳 순서에 따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김 대통령 옆에 자리를 잡게되는 불편함을 의식했을 것이라는게 일본 외교가의 지적이다. 또 이번 APEC 회담의 경우, 참가국 정상들의 화제가 미국에 대한 동시 테러사건에 집중돼 한일 양자관계를 살필 겨를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을 재촉하게 만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특히 이번 방한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한일 관계가 계속 표류하는 가운데 자신의 외교역량이 국내외의 심판에 오를 수도 있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야당으로부터 한일, 한중관계 악화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일단 한국과 중국을 조기 방문, 관계개선을 위한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는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이 테러 보복공격을 앞두고 있는 미묘한 시점을 활용,동북아 안보 및 한.중.일 3자 결속이라는 대의명분을 갖고 한국과 중국 방문길에 오르는 기회를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연합뉴스) 고승일특파원 ksi@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