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區싸움...사업일정 오락가락..재건축 경쟁 치열한 잠실.청담 도곡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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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강태원(36)씨는 지난 주말 전세집을 얻기 위해 강남구 도곡동 일대를 하루종일 헤집고 다녔지만 허탕이었다.
빈집이 눈에 띄는 단지에서도 전세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
강씨는 "중개업소에선 재건축 사업승인을 받은 뒤에도 1년 정도는 더 살 수 있다던데 전세는 물론 월세도 구할 수 없었다"며 허탈해했다.
청담·도곡지구와 잠실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건축 순위경쟁이 가뜩이나 심각한 전·월세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부 단지에선 조합과 시공사가 이주를 부추겨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빈 상태이고 다른 단지에서도 이주시 유리한 월세물건만 넘쳐나고 있다.
부동산전문가들은 "먼저 재건축을 하겠다는 주민들만 탓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명확한 일정 제시도 없이 시와 자치구가 책임을 떠넘기다가 오히려 전·월세 시장만 왜곡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민 전세시장 공동화(空同化) 우려=서민들이 많이 세들어 사는 대표적 주거지역인 청담·도곡지구와 잠실지구에서는 전세물건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20년 이상된 10평형대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전세금이 4천만∼6천만원선이었지만 재건축 경쟁이 불붙으면서 집을 비워 두거나 월세만 고집하는 집주인이 늘고 있어서다.
현재 청담도곡지구에선 지난 두달새 12개 단지중 9개 단지(8천24가구)가 강남구에 사업승인을 신청했다.
잠실에서도 잠실 주공1단지를 제외한 4개 단지가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까지 어느 단지가 언제 먼저 첫삽을 뜰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도곡동 P공인 관계자는 "1순위 단지는 하느님만 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경쟁이 뜨겁다"며 "그런데도 벌써 빈집이 늘고 있고 집주인들도 이주가 쉬운 월세만 내놓아 애꿎은 서민들만 고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 단지가 재건축이 되기까지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데 모든 단지가 내일이라도 재건축할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지금도 문제지만 2,3순위 단지가 결정될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행정당국 책임 떠넘기기 급급=재건축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행정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서울시는 자치구가 모든 단지의 재건축 순서를 정하라는 입장인 반면 자치구는 시가 민원이 예상되는 모든 결정을 자치구에 미루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전세문제를 미리 걱정하다 오히려 전세난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자치구에 맡겼더라면 자연스레 시기조정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강남구는 서울시의 방침을 받아들여 우선 재건축 단지 선정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민들의 민원을 우려해 12개 조합에 자율적으로 순서를 정할 것을 요청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청담·도곡지구 한 단지의 조합장은 "서울시가 2천5백가구까지 구청장이 판단해 사업승인을 내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남구는 조합장들에게 자율적으로 순서를 조율해 보라고 미루고 있다"며 "시와 구청의 틈바구니에 낀 조합들도 피해를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