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시장 주변의 다양한 여건과 재료에 눈을 돌리고 있다. 달러/엔 환율과 수급 요인에 한정돼 있던 시야가 아시아 통화, 국내외 증시, 미국의 달러 강세 정책 변화 가능성 등까지 넓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장중 1,280.90원까지 떨어지면서 20원 가량의 낙폭을 경험했던 서울외환시장은 여러 변수들의 조합을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다. 재정경제부의 구두개입을 통한 분위기 반전으로 닷새만에 상승 마감했지만 이번주 환율은 최근 아래쪽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향 조정된 박스권 아래서의 급격한 내몰림은 아니겠지만 점진적인 하락 조정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시장참가자들은 당국의 개입이 들어선 1,280원을 놓고 △ 지지력 확인을 통한 큰 범위의 박스권 회귀와 △ 하락세의 일시적인 방해요인일 뿐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 어느 쪽으로든 최근 시장의 흐름은 한쪽으로 쉽게 간다. 업체들의 실수참여가 부진한 상황에서 시장이 얇아지면 순간적인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는 셈. 이번주 거래범위는 '1,278∼1,298원' 범위에서 전반적으로 1,280원대 안착이냐, 1,290원대 회복이냐를 놓고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 달러 약세론이 주류 = 전 세계적인 달러 약세의 흐름에서 원화라고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 하락세 견해의 가장 큰 근거다. 달러화는 지난주 말 7월 실업률과 구매관리자협회(NAPM) 비제조업지수 사이에서 악재쪽으로 작용한 후자를 선택해 약세로 마감했다. 최근만해도 예상보다 나빠진 소비자신뢰지수, 기업 실적, 전미구매관리자협회(NAPM) 제조업지수, 공장 주문 통계 등이 달러화에 충격을 가했다. 달러 약세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완연해졌다. 7월 실업률이 4.5%로 전달과 같은 수준으로 예상보다 악화되지 않았으나 이를 무시한 반면 구매관리자협회(NAPM) 비제조업지수 당초 전망보다 낮은 48.9에 머무른 것이 달러에 반영됐다. 부시 행정부의 강한 달러정책에 대한 불만과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폴 크루그먼 MIT교수는 "현재 달러화 고평가는 기술부문의 거품 현상과 닮았다"며 "달러화 하락은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달러 약세가 세계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함으로써 달러화가 정책과 무관하게 평가절하될 것임을 강조했다. 엔화의 경우에도 하야미 일본은행(BOJ) 총재가 현재 엔화가 그다지 강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해 엔화 강세의 진전을 용인하겠다고 시사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 펀더멘털을 고려하면 엔화가 강세로 갈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임을 고려해야 한다. 기존 달러/엔 환율에 대한 집착에서 '달러화'라는 기축통화에 대한 관점과 여타 아시아 통화의 흐름까지 시각을 넓힌 것이 최근의 흐름.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미국이 워낙 좋지 않아서 어떤 추세보다는 달러화에 대한 펀더멘털이 원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시장이 아래쪽으로 향해 있음은 여기에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의 딜러는 "엔화뿐 아니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싱가포르 달러, 대만 달러 등에도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유행이 생겼다"며 "언제까지 갈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달러 약세라는 주류가 각국 통화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원화에까지 전파되는 효과가 있다. 최근 부쩍 힘이 떨어진 역외세력의 매수여력이 이같은 대세의 흐름을 방증하고 있다. ◆ 외환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감 = 1,280원에 대한 강한 경계감은 당국의 구두 개입에 의해 확인됐다. 정책적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시장 분위기를 갈아엎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 당국의 개입은 최근 수출부진과 그에 따른 경기회복 기대감의 지연을 고려한 처사로 풀이된다. 시장참가자들 사이에 1,280원 바닥론은 이같은 현 경제상황과 정책적 고려를 근거로 한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아래쪽에 제동이 걸렸다"며 "물량이 매번 쏟아지면 모를까 당국의 개입으로 물량 부담이 덜어져 낙폭 과대에 따른 저점 매수세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1,280원대에서는 사야한다는 신호를 줘서 장이 자연스럽게 지지되도록 연출했다는 것이다. 시장은 당국의 명확한 의지가 전달된 만큼 쉽사리 팔자(숏)플레이에 나설 수가 없다. 물량이 나와 환율이 떨어져도 추격매도에 나서 당국과 맞서기엔 역부족이다. 국책은행 등을 통한 1차 지지세력은 물론 연말까지 1,000억달러를 채우려는 외환보유고가 있다. 오는 7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수출부진 등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환율 급락이 가져다주는 부담감을 덜어낼 필요도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 수출과 환율 사이의 상관관계에 집착하는 당국의 인식이 4개월만의 개입을 불러왔다. 시장참가자들은 1,280원이 중요한 레벨이라고 생각지는않고 있지만 당국의 안정권 인식 범위인 '1,280∼1,315원'이 큰 범위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당장 최근 국내외 증시의 강세를 비롯, 외국인 주식 순매수에 따른 달러 공급, 역외선물환(NDF)정산관련 역내 매도물량을 소화하지 않고 있는 역외세력의 느슨한 매수를 감안하면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달러/엔이 상승하지 않으면 달러/원을 상승시킬만한 모멘텀이 없다"며 "하락요인이 크고 달러 약세에 대한 조정 그림을 보면 지난달보다 조금 낮은 레인지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요한 레벨로 인식되고 있는 1,278원이 깨지면 달러되팔기 물량이 쏟아지면서 큰 폭의 하락도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표] 은행권 딜러 환율전망치 (2001. 8. 6∼8. 10) (단위: 원) ----------------------------------------- 딜 러 전망치 전망일 ----------------------------------------- 한빛은행 강주영대리 1,282∼1,305 8. 4 보스톤 김영천지배인 1,285∼1,295 8. 3 조흥은행 김장욱계장 1,285∼1,295 8. 4 국민은행 김진권계장 1,280∼1,290 8. 4 제일은행 류동락과장 1,270∼1,295 8. 4 기업은행 박상배대리 1,280∼1,293 8. 4 BOA 송화성지배인 1,280∼1,300 8. 3 도이치 신용석부지점장 1,278∼1,298 8. 3 스탠다드 양호선부장 1,280∼1,295 8. 3 한미은행 유현정과장 1,282∼1,295 8. 4 HSBC 이주호부장 1,275∼1,295 8. 3 체이스 이성희부지점장 1,280∼1,295 8. 3 BNP 이진혁지배인 1,285∼1,295 8. 3 아랍은행 정운갑지배인 1,270∼1,295 8. 3 주택은행 조성익대리 1,280∼1,298 8. 4 NAB 홍승모과장 1,270∼1,295 8. 3 ------------------------------------------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