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최근의 신흥시장 위기는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는 다르다. 다행스런 점은 이번 위기가 전세계적으로 번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단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으로 확산될 염려는 없는 것 같다. 반면 나쁜 측면은 이번 위기가 아시아 신흥 경제국들의 성장에 강도 높은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번 위기는 남미 지역 국가들의 경제 전망도 매우 어둡게 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이번 위기로 인해 입는 피해가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5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투자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과거처럼 완전히 방심한 태도로 허를 찔리지는 않았다. 때문에 최근의 신흥시장 위기는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 만큼 위력적이지 못했고 이미 취약해져 있는 미국 경제에 더 악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 둘째,그동안 막대한 액수의 자금이 신흥시장을 빠져나갔다. 비틀거리는 경제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은 무려 올해 7백50억달러의 자금 유출을 감수해야 할 전망이다. 더 많은 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여겨지는 미국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셋째,신흥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이들 해당국의 통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는 곧 이들 국가의 상품이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경제난으로 고생하고 있는 일본이 '약한 엔화'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이들 신흥국의 통화가 엔화에 대해 강세를 띠는 것은 어차피 바람직하지 못하다. 넷째,미국의 금리 인하 추세는 신흥 시장들에 득이 될 것이며 글로벌 위기를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미국은 신흥시장에서 수입되는 제품의 가격이 낮아져 물가에 대한 걱정이 잠재워지게 되면 금리 인하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도 덜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흥시장의 성장 둔화로 인한 세계적인 수요 감소는 문제가 되기에는 그다지 파장이 크지 않다. 물론 일본이나 유럽 미국 등은 신흥 개발도상국들에 수출을 한다. 유럽의 경우 전체 수출 규모의 19%,미국은 41%,일본은 45%가 이들 나라의 몫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별로 크지 않다. 이들 세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할 때 신흥시장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겨우 2.5∼3.3% 수준으로 작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까닭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흥시장의 수요 둔화로 인해 더 심한 충격을 받는 것은 이들의 자국 시장이다. 해외 자본 유치가 더 힘들어지고 그에 따른 금융 비용도 증폭되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중 하나는 과도한 단기 자금의 유입이었다. 그리고 위기 이후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들의 가치가 턱없이 낮아진 상황에서 비싼 외자를 들여와 부채나 재정 적자를 메우느라 바쁘게 움직여왔다. 97년 이전에는 아시아 국가들 어느 곳도 이러한 산더미같은 정부의 재정적자,높은 금리,스태그플레이션,자본 궁핍 등으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것은 남미 국가들의 증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암울한 증상'은 대개 정부의 부실한 정책에 기인한다. 공공 분야의 차입이 불어나면 생산적인 투자는 줄어들고 따라서 성장을 죽이기 때문이다. 차입 비용이 성장의 속도를 앞지르게 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들은 서로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이런 무서운 전염병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의 통화정책에 있어서 고정환율제는 커다란 취약점이 될 수 있다. 환율의 움직임이 신축적이지 못한 이 제도는 돌발적인 위기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와 말레이시아는 고정환율제를 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사실 고정환율제 자체가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제도를 뒷받침해줄 만큼 시장을 충분히 자유화하지 못한 데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신흥국들의 고정환율제에 대한 자신감의 부족은 금리를 높게 유지하도록 하며 이는 투자를 둔화시키게 마련이다. 그리고 결국 자산 가치를 떨어뜨리고 성장을 더디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구조적인 결함은 현재 아르헨티나가 안고 있는 고민이며 앞으로 말레이시아가 맞닥뜨리게 될 문제이기도 하다. 정리=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 ............................................................... ◇이 글은 최근 아시안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Emerging markets down the tubes'라는 사설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