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노사가 전면파업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임금인상 등 8개항의 이면합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사측에서는 일부 언론에 공개된 합의서는 노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면합의를 단정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에서 이미 지적됐듯이 그간에도 공공부문의 이면합의가 광범위하게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그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금융노련이 지난번 금융권 파업 수습과정에서 금감위원장과 이면합의가 있었다고 스스로 밝힌데 이어 담배인삼공사 한국통신 한전 등에서 비슷한 의혹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과연 이 정부에 최소한의 도덕성이 있는지 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들이다. 도대체 환란 이후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고 외쳐 왔던 정부가 어떻게 겉으로는 구조조정을 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눈가림식의 은밀한 거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부가 개입된 이면합의의 폐해는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사회를 대립적 구도로 몰고가는 빌미를 정부 스스로가 제공한다는데 더 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원칙없는 타협을 계속하다 보니 노동계를 비롯한 이익집단은 툭하면 극한투쟁으로 돌입하는 것이 오늘의 불행한 한국적 현실이다.

의약분업 파동은 물론이고 금융파업 농민시위 한전파업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원칙없는 태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러고도 노조나 이익단체가 발목을 잡아 개혁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정부는 한전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이면합의설의 진위를 명백히 밝혀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를 즉각 파기하는 한편 책임자에게는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지난번 감사원 감사에서 수많은 이면계약 사실이 적발됐으나 아직 시정조치가 있었다거나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뭐가 잘못 돼도 보통 잘못 된 일이 아니다.

국민을 속이고 혈세를 낭비한 것이 버젓이 알려졌는데도 이를 시정하거나 문책하지 않는다면 이를 오히려 조장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공부문에서의 이면계약을 뿌리뽑지 않고는 대립적 노사관계에 발목이 잡혀 당면한 구조조정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경제의 미래도 없다. 정부는 차제에 뿌리깊은 이면계약 관행을 발본색원할 수 있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