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선은 끝나가고 있는가.

"대선 집계 마감시한(14일 오후5시)은 지켜져야 한다"는 테리 루이스 판사의 판결은 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부풀려 놓았다.

하지만 더 깊게 파보면 "변한 것은 없고 갈 길은 아직도 멀다"는 것이 워싱턴의 분석이다.

이날 루이스 판사의 판결에 따라 집계된 개표결과는 조지 부시 후보가 앨 고어 후보보다 3백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일이 없는 한 17일(금요일) 자정까지 해외부재자투표를 마감하고,18일 오전 이를 개표해 대통령이 누구인가를 선언한다는 것이 캐서린 해리스 플로리다 주무(州務)장관의 시간표다.

"해외부재자투표는 우리 텃밭"이라고 여기고 있는 공화당에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이를 호락호락 좌시할 고어와 민주당이 아니다.

루이스 판사는 민주당 출신이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맥락에서 민주당의 목을 조일리 없다.

"마감이후에 이루어진 재검표 결과를 최종 집계에서 제외하려면 ''타당한 이유(good reason)''가 있어야 한다"는 루이스 판사의 판시는 민주당지지 지역인 팜비치 카운티 등의 수작업재검표를 묵시적으로 인정한 것이고 이는 보기에 따라 공화당에 던져준 ''마감시한 연기 거부''보다 더 큰 선물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고무된 팜비치 카운티는 15일 아침 7시부터 수작업 재검표를 재개하기로 이미 결정했으며 볼루시아와 데이드 카운티 등도 재검표를 진행하고 있다.

결국 공화·민주의 법정싸움환경은 전혀 바뀐 것이 없고 오히려 싸움의 강도가 높아졌을 뿐이라는 견해도 많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공화·민주당의 정중동(靜中動)은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것이 워싱턴정계를 잘 아는 사람들의 분석이다.

그 예로 민주당은 주(州)대법원에 소(訴)를 제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 연방대법원 신세를 지지 않을수 없다는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 CBS와 NBC의 보도다.

사정은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루이스의 판결에 따라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경계까지 누그러뜨리는 것은 아니다.

수작업재검표를 중지해달라는 항소를 연방지법에 냈다가 민주당출신의 도널드 미들브룩스 판사에 의해 기각당했던 공화당은 조지아주 애틀랜타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할 뜻을 분명히하고 있다.

결국 공화당 또한 ''연방대법원까지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는 게 이곳 유력 언론들의 관측이다.

결국 일반의 기대와는 달리 양당간의 싸움은 상당기간 더 지속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어찌됐건 당장의 관심은 해리스 플로리다 주무장관에게 모아지고 있다.

루이스 판사가 그녀에게 재량권을 위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재량권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우선 그녀는 부시의 뉴햄프셔 예비선거에 적극 참여했던 골수 공화당원이다.

부시 후보의 동생이자 플로리다 주지사인 젭 부시의 부하직원이기도 하다.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 대사로 지명될 것이라는 보도까지 있었다.

대통령직이 걸려있는 싸움에 심판을 보기엔 결함이 많다는 자격시비에 걸려 있는 것이다.

모든 정황을 고려해볼 때 미 대선 흐름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지루한 법정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다만 미 대선이 조기에 종식될 수 있으려면 부시가 부재자투표에서 기대이상의 표 차이를 내 고어가 수작업 재검표에 추가한 표를 압도하는 시나리오밖에 없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통령직을 놓고 벌이는 두 진영의 싸움은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