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국제통화기금(IMF)위기 이후 두번째로 대대적인 퇴출기업 명단이 발표됐다.

이번 기업퇴출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IMF 위기상황이 어디까지 극복되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들 사이에는 이 문제에 대해 혼선을 빚고 있다.

일부에서는 IMF 체제를 졸업한 국가로 보는가 하면 오히려 더 곤경에 빠지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가장 큰 원인은 IMF 위기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돼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우리처럼 금융담보 관행이 보편화된 국가에서 외화유동성이 부족한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금융과 실물부문에 균열이 생기는 시스템 위기로 전염된다.

다시 말해 외환위기 과정에서 기업이 부도가 나면 금융기관이 갖고 있던 담보채권이 부실화된다.

기업부도가 잇따르면 금융기관은 부실채권이 더 쌓이면서 목이 조이게 된다.

바로 이 시점이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금융위기''단계다.

물론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실물위기로 치닫는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 나라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부족한 외화유동성을 채우는 첫번째 단계만 끝났다는 의미다.

문제는 우리 경제의 쓰레기에 해당되는 부실채권(부실기업 포함)을 청소하는 시스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제는 남아 있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의 참뜻도 경제 전반에 깔려있는 쓰레기를 청소해 우리 국민들의 새로운 먹거리에 해당하는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깨끗한 경제토양을 만드는 작업이다.

현재 청소해야 될 부실채권은 최대 3백조원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처럼 당사자간 채권·채무관계를 소멸시켜 문제의 채권을 해결하는 ''브래디 방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있어서는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자금이 있어야 한다.

원래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자금은 펌프에서 물을 퍼 올리는 것(pumping-up policy)과 같은 이치로 비유된다.

위기 초기에 구조조정이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강도있게 추진됐을 경우 부실채권을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물(자금)이 생기게 된다.

정책당국과 채권단이 싼 값으로 매입한 주식값이 기업회생 정도에 따라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조성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정책당국과 채권단이 위기 초기에 구조조정을 잘못 추진했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하면서 누구보다 자성해야 할 사람은 바로 정책당국과 채권단이다.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하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일단 ''죽일 기업''과 ''살릴 기업''이 정해진 만큼 살릴 기업은 확실히 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의 기업정책이 위기 3년차를 맞아 ''두들겨 패기''식에서 ''적극적인 후원자''입장으로 변한 점을 참조해야 한다.

앞으로 부실기업 퇴출은 금융기관과 감독기관의 엄정한 심사로 시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이번 퇴출기업 명단발표를 계기로 한국 디지탈라인과 동방금고 사건에 연루된 금감원과 정치권의 도적적 해이문제가 미해결된 상태로 파묻히는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