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경제의 요람"으로 불리는 나스닥.

마이크로소프트, AOL, 시스코 시스템스 등 신경제 혁명을 주도한 첨단 기업들을 길러낸 곳이다.

새로운 "하이테크 신화"를 꿈꾸며 나스닥에 둥지를 트는 기업들의 행렬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3백29개 업체가 나스닥에 기업을 공개(IPO)해 4백24억4천8백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증시가 절정의 활황을 구가했던 지난해 전체(4백85개사, 5백4억2천5백만달러)에는 아직 못미치지만 98년 한햇동안의 실적(2백73개사, 1백37억5천7백만달러)은 이미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퇴출''당한 업체도 적지 않다.

8월말 현재 상장기업 수는 4천9백6개로 1년 전인 작년 8월말(4천8백74개사)에 비해 32개사가 더 많은데 불과하다.

3백개 이상의 기업이 나스닥에서 퇴출(상장 폐지)당했다는 얘기다.

나스닥 홍보팀의 데보라 들루슨 과장은 "이중 일부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등 다른 증권시장으로 옮겨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등록조건을 유지하지 못해 쫓겨났다"고 귀띔한다.

나스닥에서 매년 4백~6백개의 창업 기업이 IPO를 통해 상장하고, 그와 엇비슷한 숫자의 업체가 퇴출당하는 일이 벌써 몇십년째 ''전통''처럼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다산다사형(多産多死型)이다.

나스닥 운영기관인 전미주식거래협회(NASD)의 프랭크 자브 회장은 그 요인을 "주식시장 운영을 완전한 시장경쟁 원리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다산(多産)이 가능한 것은 등록기준이 한국이나 일본의 유사 시장에 비해 훨씬 유연하기 때문이다.

등록조건으로 회계 장부의 내용을 따지지 않는다.

설립 이후 줄곧 적자를 지속해 왔더라도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만한 첨단 기술이나 사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등록이 가능하다.

현대증권 뉴욕법인의 주익수 사장은 "나스닥 상장기업들 가운데 40% 가량은 아직 흑자를 내본 적이 없는 적자업체들"이라고 말한다.

이런 구조에서 다산 못지않은 다사(多死)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등록이 쉬웠던 만큼 투자자들의 손길을 붙잡지 못하면 그대로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

일단 나스닥에 등록한 기업은 엄격한 정보공개(disclosure)를 요구받는다.

등록 당시 자사의 장래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명시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수시로 다른 회사와의 경쟁관계 변화나 시황 변동에 따라 입을 손실위험 등 예상되는 리스크도 모조리 공시해야 한다.

그에 대한 판단은 투자자들의 몫이다.

''투명한 정보공개''에 대한 미국증시의 요건이 얼마나 엄격한지는 지난해 나스닥에 상장한 한국기업 두루넷의 경험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당사의 사업 모델은 광대역 인터넷서비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바 이는 아직 검증된 비즈니스가 아님" "대주주인 한국전력이 통신사업을 민영화할 경우 당사의 기간 설비 임차 비용이 높아질 수 있음"

지난해 한국기업으로는 처음 미국 나스닥에 주식을 직상장한 기간통신사업체 두루넷이 현지 투자자들에게 배포한 기업 설명서(prospectus)에 들어 있는 문구들이다.

두루넷은 1백여쪽에 걸친 기업 설명서의 머릿부분을 이처럼 회사에 불리한 정보들만을 담은 ''리스크 요인''으로 채웠다.

스스로의 약점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 ''리스크 요인''은 무려 38가지에 달했다.

두루넷이 이렇게 ''자살 공격식''으로 설명서를 꾸민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감독당국인 증권감독위원회(SEC) 요구사항이 그랬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시장에서 기업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들부터 한 점 숨김없이 공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당 기업의 강점은 재무제표 등을 통해 투자자들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게 SEC나 나스닥측의 입장이다.

스커더 켐퍼 증권의 존 리 코리아 펀드 매니저(40)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대해 회계기준의 투명성과 경영정보 공개 등을 확립토록 자신있게 요구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미국산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정받는 경영 투명성은 기업들의 경쟁체질을 강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월가를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데도 일조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특별취재팀 : 한상춘 전문위원, 이학영 차장(국제부), 육동인 특파원(뉴욕), 강은구(영상정보부), 김홍열(증권1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