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중심에 선 영화 두편이 21일 나란히 개봉된다.

죽음을 부르는 노래에 얽힌 "글루미 선데이"와 음악의 힘으로 희망을 전하는 "뮤직 오브 하트"다.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유럽과 할리우드산.장르나 색깔은 태생적 차이만큼이나 상이하지만 두 작품은 모두 쉽게 지워지지 않는 공명을 남긴다.

<>뮤직 오브 하트(Music of the Heart)

로버타 과스파리(메릴 스트립)는 절망에 빠져있다.

바람난 남편은 자신과 어린 두아들을 버리고 떠났다.

생계를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한다.

한때는 유망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았지만 해군장교인 남편을 따라 수시로 거주지를 옮기느라 재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었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뉴욕 할렘가 초등학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일자리를 얻었다.

아이들은 터무니없이 반항적이고 흑인 학부모들은 백인인 그에게 적대감을 보인다.

정교사들의 시선도 곱지않다.

그러나 그의 타고난 열정은 아이들과 모두를 동화시킨다.

버림받은 여인의 홀로서기 그리고 말썽많은 학생녀석들을 변화시키는 선생님.꽤나 상투적이다.

보기도 많이 봤고 듣기도 많이 들었다.

어차피 틀에 박힌 공식대로 진행되겠지.예상대로다.

이야기는 예측가능한 전개에서 별반 어긋남이 없다.

현재도 할렘에서 교사로 일하는 로버트 과스파리를 모델로 했다는 영화는 "감동적인 실화"가 담보하는 일정한 감동을 제외하곤 그다지 기대를 갖지 않게 한다.

게다가 그 실화조차 앞서 다큐멘터리 "스몰 원더"로 제작됐던 "구문"이란다.

그러나 영화에는 예상을 넘는 놀랄만한 활기와 생동감이 넘친다.

음악이 전하는 온기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들의 가슴에 따뜻하게 번진다.

뻔할 듯 했던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단연 메릴 스트립이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온 그는 이번에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마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가 남편에게 돌아와 달라며 눈물을 흘릴때 관객은 함께 눈시울을 적시고 다리가 불편한 아이에게 "내면의 네가 단단히 서면 되는 거야"라며 속삭일땐 함께 따뜻한 용기를 얻는다.

바이올린 교실을 지키기 위해 카네기홀에서 열린 아이들과 실제
바이올리니스트 거장들의 무대는 작품의 클라이막스이자 감동의 절정이다.

영민한 눈을 반짝이는 아이작 스턴이나 이작 펄만,조수아 벨.아놀드 슈타인하트,마크 오코너같은 거장들을 당당히 리드하는 메릴 스트립이 연주를 마치고 자랑스런 한숨을 쉬어보일땐 극중 청중들과 함께 일어나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다.

출중할 것 없어 보이던 그의 얼굴은 순간 세상 어떤 배우보다도 눈부시게 빛난다.

"엘름가의 악몽""스크림1,2"등으로 공포영화에서 일가견을 보여온 웨스 크레이븐이 전혀 다른 장르에 도전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이 동료 여교사로 스크린에 첫 데뷔했다.

<>글루미 썬데이(Gloomy Sunday)

"우울한 일요일/내 시간은 헛되이 떠도네/내마음은 모든 것을 끝네려 하네/그러나 아무도 눈물흘리지 않기를/나는 기쁘게 떠나간다네" 그 나직한 단조의 선율이 영혼의 심연에 닿으면 잠자던 깊은 우울과 절망이 눈뜬다.

슬픔이 격렬하게 뒤엉킬 즈음 고통을 견디지 못한 영혼은 영원한 안식을 향해 떠난다.

나른하고 우울한 스탠더드 재즈 "글루미 썬데이"는 "자살자의 찬가"로 알려져 있다.

1935년 헝가리에선 1백87명이 이 노래를 듣다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파리에서는 레이 벤추라가 지휘하던 콘서트에서 노래가 끝나기도 전 연주자들이 자살을 했다.

작곡자인 레조 세레스도 저주받은 곡을 만들었다는 오명속에 괴로워하다 결국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가 실연의 아픔속에 만든 "글루미 썬데이"는 그렇게 전설이 됐다.

독일 롤프 슈벨 감독의 영화 "글루미 썬데이"는 바로 그 죽음의 송가를 토대로 쓴 닉 바르코의 소설 "슬픈 일요일의 노래"(88년작)를 원작으로 했다.

음악에 얽힌 비극적인 사랑을 축으로 우정과 배신 그리고 복수를 치밀하게 엮어나간다.

부다페스트의 고풍스런 전경을 비추던 카메라는 시내의 작지만 고급스런 레스토랑에서 일어난 한 노인의 죽음으로 옮겨간다.

죽은이는 독일 굴지의 사업가인 한스.카메라는 시간을 거슬러 60년전 그자리를 배경으로 한 여자를 사랑한 세남자를 향한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유대인 자보(조아킴 크롤).그의 곁엔 신비한 매력을 지닌 연인 일로나가 있다.

식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사람을 찾던 그들에게 남루한 차림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시니)가 찾아온다.

일로나는 자보의 따스함과 안드라스의 예술적 감수성을 동시에 사랑한다.

안드라스는 일로나에게 "글루미 썬데이"를 바치고 세사람은 특별한 공유관계를 시작한다.

3년후.나치의 점령과 함께 과거 일로나에게 거절당한 독일인 한스가 그들앞에 장교복을 입고 나타난다.

서툴고 순수했던 청년의 눈빛은 야욕에 불타는 냉혈한의 것으로 바뀌어 있다.

가슴을 적시는 멜로와 반전을 갖춘 미스테리는 한땀의 이음새도 없이 매끈하게 어우러진다.

개인의 운명을 뒤바꾼 비운의 사랑은 나아가 인간의 저열한 내면과 시대적 비극을 통찰하는데까지 이른다.

넋을 앗아갈듯한 눈동자가 인상적인 "뮤즈"는 헝가리 출신 에리카 마로잔.극적인 재미와 아름다운 음악외에 사랑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여주인공을 만나는 것도 큰 기쁨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슈벨(58)은 독일에서 빔 벤더스 이후 가장 주목받는 감독으로 손꼽히고 있다.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움을 십분 살려낸 영상미는 "유로파""화이트"에서 "카메라의 시인"이란 이름을 얻은 촬영감독 에드워드 클로진스키의 몫이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