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분양실적 10위안에 드는 K사는 지난해 경기도 용인일대에서 3만평정도의 아파트부지를 사들였다.

사업시행사가 아파트를 함께 짓자고 제의해오는 땅가운데 분양가능성이 높은 부지만을 선택,사업시행사에 어음을 배서해주는 방식으로 땅을 매입했다.

K사가 배서해준 금액은 2백억원가량이다.

당시엔 용인일대의 분양시장이 괜찮았기 때문에 분양에 나서면 곧바로 회수할 수 있는 돈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수도권 난개발문제가 거론되면서 분양사업은 기약없이 늦어지고 있다.

K사는 분양지연으로 요즘 심각한 유동성위기에 빠져 있다.

비단 K사만이 아니다.

땅을 산 후 분양을 못하고 있는 건설회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1백개 건설업체중 법정관리나 화의,워크아웃 등 "관리상태"에 있는 업체가 무려 38개사에 이른다.

◆사업중단 속출=국내 최대주택업체인 현대산업개발은 올해 3만2천여가구를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상반기까지 계획의 25% 수준인 8천여가구만 공급했다.

부동산시장 침체에 인·허가문제로 대부분의 사업이 중단됐다.

올들어 6월 말까지 전국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17만6천3백여가구다.

연초 계획물량 52만가구의 34% 수준이다.

그나마 공공부문 5만1천6백여가구를 뺀 민간부문 공급물량은 12만4천7백여가구에 불과하다.

미분양 적체에 난개발 여파로 인·허가가 거의 나지 않는 탓이다.

주택업계는 용인을 비롯해 수도권 준농림지에 묶여 있는 아파트부지만 3백만여평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지을 만한 땅의 평균가격을 50만원으로 잡았을 때 1조5천억원 가량의 자금이 잠겨 있는 셈이다.

◆예측 불가능한 주택정책=걸핏하면 바뀌는 주택정책도 주택업체들의 경영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물론 업체들이 정책변경의 원인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지만 문제는 여론의 포화가 쏟아졌을 때 펼치는 당국의 대처방식이다.

여론이 들끓으면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방식이 보편화돼있다.

멀쩡한 땅을 샀다가 느닷없이 규정이 바뀌는 바람에 멍든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수도권 준농림지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파트 분양의 기준이 되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도 95년 이후에 10번,올들어서만도 2번이나 개정됐다.

주택분양은 시기(타이밍)가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주택정책이 자주 바뀌면서 분양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체들의 하소연이다.

◆수요자를 외면한 주택업계=대형건설업체인 L사는 경기도 용인에서 지난 98년4월부터 4차례에 걸쳐 아파트를 분양했다.

이 회사가 지난 98년4월 용인지역에서 아파트를 첫 분양할때 책정한 평당 분양가는 5백35만원선이었다.

이에 비해 용인분양시장이 정점에 올랐을 때인 지난해 9월 L사가 분양한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최고 6백45만원선이었다.

분양가격만 높아진 게 아니다.

분양아파트의 평수도 경쟁적으로 커졌다.

대형평형일수록 마진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분양권전매 완전허용으로 단기차익을 노린 ''떴다방''과 가수요자들이 몰려들면서 분양시장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이제는 주택업계에서 분양가가 높은 중대형 평형위주로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수요자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