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여러분에게 잠시나마 더위를 싹 잊게 할 기이한 이야기 하나를 해볼까 한다.

낯설긴 하지만 어쩐지 잘 아는 것 같은 나라의 이야기다.

우선 그곳에서 벌어졌던 사건 하나.

어떤 영화감독이 친구들과 영화사를 차렸는데,사실 그 회사는 준비중인 작품이나 스튜디오는 커녕 복사기 한 대도 없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사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열광적으로 주식을 사더니 단번에 20억 달러의 돈을 몰아주었다.

물론 빈껍데기 회사라는 걸 뻔히 알면서 말이다.

영화사의 이름은 드림웍스이고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

생긴 지 얼마 안 된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각고의 노력 끝에 멋진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더니 고생이 너무 심했는지 머리가 살짝 돌아 그것을 돈 한푼 받지 않고 4천만 카피나 시장에 뿌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공짜에 신이 나서 너도나도 그것을 썼는데 어느 틈엔가 이 프로그램은 표준이 되었고 회사는 또 뭘 할까 궁리하고 있다.

회사 이름은 넷스케이프이고 프로그램은 네비게이터다.

이 정도 사건은 비일비재하여 더 소개하기도 힘들다.

그곳에서는 기업이 물건 하나를 팔아도 소비자가 싫증낼 때까지 고쳐주고 바꿔주고 연락을 해대서 물건을 산 건지 서비스를 받는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상품이 아니라 만족감을 산 거라고 말하곤 한다.

또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자주 뒤바뀌어서 물건을 산 사람이 돈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산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고 다음에도 그 회사 물건을 사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말이다.

기업들도 괴상하다.

기업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이 없으면 다른 경쟁사의 것을 대신 사서라도 공급한다.

물론 같이 만들어서 파는 경우도 많지만…

목적은 단 하나,시장이 커지면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원수지간인 애플과 IBM이 ''파워PC''를 만든 게 그 경우라고 한다.

그곳에서는 자본이 많은 게 자랑이 아니다.

자본을 그냥 쌓아놓았다가는 그것을 재빨리 써버리는 기업에게 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브랜드 인지도라든지 조직력,고객 관심도 같은 것을 사려고 돈을 펑펑 써댄다고 한다.

개인들도 괴상하긴 마찬가지다.

여장 남자로 유명한 한 록가수는 자신을 주식시장에 상장해서 5천만 달러를 거둬들였는데 앞으로 돈을 벌면 주주에게 일정 액수를 돌려준다고 한다.

가수의 이름은 데이비드 보위다.

이런 경제를 그곳 사람들은 ''블러(Blur)''라고 부른다.

모든 경계가 흐릿하게 뒤섞여있다는 뜻이다.

제품과 서비스는 물론이요,구매자와 판매자,고용자와 피고용자,기업과 기업의 경계가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그곳 경제학자는 그 원인으로 속도(Speed),연결성(Connectivity),무형적 가치(Intangible Value)를 든다.

즉 상거래 속도가 너무 빨라지고 온라인을 통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며 무형적인 가치가 급성장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변화의 충격''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있다.

어떤가.

재미있지 않은가.

사실 이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이 책 ''변화의 충격''(스탠 데이비스·크리스토퍼 메이어 지음,김한영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1만4천원)에 다 나와있다.

< 데이비드 그린웰 Cap Gemini Ernst & Young,Korea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