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백강 <역사학 박사. 민족문화연구원장>

민족과 국가는 서로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다.

민족이 융화하면 국가도 따라서 융성하고 민족이 분열되면 국가도 따라서 패망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세계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중국 한족만큼 민족융화정책을 잘 쓰는 민족도 흔치 않다.

그들은 자기 동일민족 뿐만 아니라 이민족에 대해서까지도 융화정책을 잘 쓴다.

그 결과 지금 25개 성,5개 소수민족 자치구의 유럽 전체면적에 해당하는 방대한 영토를 소유하며 한족이외에 55개 소수민족의 12억 인구를 거느린 거대 국가가 됐다.

우리 한민족은 일찍이 뿌리를 중국대륙의 동북지역에 둔 고대 동방의 대표적 민족이었다.

그런데 그처럼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민족이 오늘날 겨우 바다 한 모퉁이 한반도에 의지하고 있는 보잘것 없는 약소민족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민족이 융화하지 못하고 분열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연개소문이 고구려 영류왕을 살해하고 그 조카 보장왕을 세웠을 때 당태종이 내린 조서가운데는 "문죄요갈"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요"는 요동,즉 오늘날의 요령성을 말하고 "갈"은 갈석산,즉 오늘날의 하북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때까지만 해도 동북3성은 물론 하북성 일대까지 고구려의 판도 안에 들어있었다는 걸 알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강대하던 고구려는 결국 민족 분열로 인해 당나라 고종에 의해 멸망되고 말았다.

조선조 때 동인 세력과 서인 세력의 분열이 국가를 누란의 위기로 몰고가 임진왜란을 불러왔고,근대사에선 남쪽의 자유진영과 북쪽 공산진영의 대립이 결국 남북분단,6.25 동족상잔을 초래했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역사가 민족분열 동족상잔의 부끄러운 역사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조선조 중종 때 학자 유희령이 편찬한 "동국사략"은 단군 조선 1500년,기자조선 943년,위만조선 88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고조선 2500여년 역사 가운데 어느 대목에서도 "동족상잔"이나 "민족분열"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다.

그런데 단군에 대한 뿌리를 잊고 고구려는 동명왕을,백제는 온조를,신라는 박혁거세를 자신들의 시조로 섬기면서 정신적 사상적으로 대립한 것이 민족분열의 단초가 됐다.

이제 우리 한민족이 다시 민족분열이 아닌 민족융화의 새 역사를 열기 위해서는 고구려의 동명왕이나 신라의 박혁거세나 백제의 온조가 아닌,우리 민족 모두의 조상인 단군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아래 안으로는 민족융화를 구현하고,밖으로는 이민족까지도 포용하는 진취적인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

동족끼리 총부리를 맞대고 대치한지 반세기만에 이루어지는 첫 만남이니 만큼 관심과 기대가 큰 것은 당연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만큼 크다.

남북 정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회담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켜 분단극복을 위한 제 1보를 힘차게 내딛고 민족융화를 위한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워야 한다.

이번 만남이 민족 새 융화의 길을 여는 성공적인 만남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잣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냉엄한 현실에서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손익의 잣대이고,다른 하나는 도덕적 대의를 바탕으로 시비곡직을 구분하는 정사의 잣대다.

이번에 두 정상이 손익과 정사의 두 잣대를 갖고 회담에 임해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남북문제는 뿌리가 같은 동족의 장래,아니 서로 헤어져 생사도 모른 채 50여년을 살아온 부모형제지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단순히 장사꾼이 만나서 돈이나 물건을 위주로 손익을 계산하는 비즈니스적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냉엄한 현실을 뒤로 한 채 지나친 이상주의나 감상주의에 사로 잡혀서도 안된다.

지나치게 손익을 따지다가 대의를 그릇친다거나,지나치게 대의만 추구하다가 현실을 간과하는 일 없이,옳고 그른 것과 이롭고 해로운 것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손익과 정사 양자가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이번 회담은 분명 민족융화의 길로 가는 튼튼한 초석을 놓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