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아시아 페이퍼 코리아(주) ]

"C사원의 첫 딸인 예진이가 선천성 심장판막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전사적인 사랑의 기부금 운동을 전개합시다"

지난 1998년 4월 21일.

옛 한솔제지 전주공장의 노사협의회인 "거목협의회"가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주변의 동료들이 모금해왔지만 이것으론 부족했기 때문이다.

C씨의 사연이 알려진 통로는 "면담결과" 보고서.

소속 반장이 지난 97년 1월말 "C씨는 자녀의 건강상태가 좋지않아 병원신세를 많이 지는데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회사 반장과 과장들은 89년부터 주기적으로 부하직원과 만나 개인적인 고충과 건의사항을 들은뒤 면담내용을 밀봉,회사에 제출해왔다.

면담실적이 부진한 사람은 연말 공장장실로 불려가 거꾸로 면담을 당하게 된다.

팀장들도 매달 한차례 사내 귀빈식당에서 팀원 10명과 점심을 같이 먹어야한다.

공장장과 생산이사는 오찬간담회와 만찬간담회에서 과장급이하 사원 60명 가량을 돌아가며 만난다.

관리자만 되면 사원의 표정 변화까지 매일 읽어야한다.

"그물망"과 같은 면담제도는 "투명경영"을 실현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98년 하반기부터 한솔그룹과 세계 1위의 신문용지업체인 아비티비 컨설리데이티드 등과 합작협의가 진행되자 사원들의 불안감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선우영석 사장은 "임의적인 해고는 절대 없다"고 설득했다.

투자협상 과정의 주요 고비마다 그 결과를 사내 전자게시판인 "에코"(ECHO)에 띄웠다.

이같은 노력은 경영실적을 개선시켜 놓았다.

99년 1월 팬 아시아 페이퍼 코리아로 새로 출범한후 연말까지 1년간 7개 생산라인에서 종이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생산되는 무절신기록을 19개나 쏟아냈다.

지난 65년 설립이후 30여년간의 신기록보다 많았다.

생산량과 영업이익도 목표를 웃돌았다.

인센티브로 정기상여금(6백%)외에 4백40%를 추가로 받게 됐다.

팬 아시아 페이퍼 코리아는 올해초 5년차 이상 8년차이하의 대리급 직원 10여명으로 "밀레니엄 커미티"를 구성,"고객으로부터 언제나 선택받는 기업"이 되기위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 전주=최승욱 기자 swchoi@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