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의 시신이 안치된 각 병원영안실은 통곡의 바다였다.

학부모들은 자식의 죽음이 믿기지 않은 듯 사진을 어루만지며 아들과 딸의
이름을 외치며 울부짖었다.

학교친구들도 "사고전날까지도 함께 놀았다"며 슬픔에 잠겼다.

<> 화재발생 이틀째인 31일 오전 10시께 희생자 5명의 빈소가 차려진 중앙
길병원 영안실은 꼬박 밤을 샌 유족들이 넋을 잃은 채 영정을 지키고 있었다.

노이화(18.여.인천여상 3년)양의 빈소가 차려진 영안실에는 이날 아침 일찍
노양의 학교 친구 10여명이 찾아와 노양의 사진을 바라보며 흐느끼며 울었다

노양의 친구 김모양(18)은 "이화가 죽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요.
얼마전까지만해도 같이 웃고 얘기했는데"라며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 인천시 중구 인현동 라이브 호프집 참사가 발생한 30일 인천지역 82개
고교중 13개 학교에서 축제가 있었던 것으로 인천시 교육청 조사결과
밝혀졌다

교육청은 학교 축제를 마친 학생들중 일부가 이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피해 학생들의 출신교가 무려 34개에 달한 점으로 미뤄
학교축제와 별도로 토요일을 맞아 학생들이 생일잔치 등을 위해 이 업소에
몰려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라이브 호프집 반경 2km 이내에는 인명피해가 컸던 인천여상과 정보
산업고, 광성고 등 6개 학교가 밀집돼 있는 점으로 볼때 이들 학생 사이에 이
호프집이 청소년들을 상대로 몰래 술장사를 하는 업소로 은밀히 알려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이번 화재에서 학생들이 최대 피해자로 드러나자 각 학교는 물론 인천
교육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를 의식한 듯 인천교육청은 월요일인 1일 오전 긴급 교장회의를 소집키로
하는 등 뒤늦게 비상이 걸렸다.

이날 회의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외지도를 보다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교육청은 특히 주말이나 학교축제가 열리는 날 등에는 각 학교별 학생부장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유흥업소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연합지도에 나서는 방안을
채택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그야말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어서 학부모들의
원성을 어떻게 잠재울 지 몰라 교육청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 5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999년 10월 30일은 인천 역사에 가장 큰
참사일로 기록될 전망이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10대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인천소방본부가 31일 밝힌 "해방이후 10대 대형 화재" 목록에 따르면 지난
45년 11월 인천 남동구 고잔동 "조선유지 인천"(현 한국화약)의 화재로 17명
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이보다 더 큰 인명 피해 화재사고는 인천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89년 여름 홍수로 인한 인천 송림동 산사태로 2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인현동 상가건물 화재사고에서 처럼 단일 사건으로
사상자가 1백30여명에 달한 사건은 없었다.

경찰관 K모(57)씨는 "인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고 30여년간 경찰에
봉직하고 있으면서 이처럼 큰 사건은 처음 보았다"면서 "아마 10월30일은
인천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치욕스런 날로 남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