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속도로 움직이는 조직을 만들라''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기업들에 떨어진 특명이다.

모든 정보를 0과 1로 구분해 광속으로 처리하는 디지털 시대엔 소비자들의
입맛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한다.

기업들의 대응도 빛의 속도로 빨라져야 한다.

기업조직이 수직적 구조를 단순히 수평적 구조로 바꾸는데 그쳐선 안되는
이유다.

빛의 속도에 걸맞는 ''디지털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은 이미 디지털 조직으로의 전환을
마무리, ''골리앗처럼 거대하면서도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시장변화에 대응
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대표적 디지털 조직으로는 하이퍼 텍스트 조직, 네트워크식 조직, 헤쳐
모여식 조직 등을 들수 있다.

대기업이 가진 연구개발 능력과 자금조달력 정보력, 그리고 중소기업의
창의성과 빠른 시장대응력을 갖추고 있는게 특징이다.

전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권투선수 알리처럼 큰 몸집에다 가볍게 날아
나비처럼 상대방을 쏠 수 있는 순발력까지 갖췄으니 경쟁력이 높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 비메모리 사업부는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거래선과 영업점
대리점 지점 물류담당부서 기흥과 온양 생산공장 등을 잇는 가상조직을
만들고 있다.

수단은 바로 인터넷.

오는 11월 1일 오픈할 이 고객지원시스템은 일종의 하이퍼 텍스트(Hyper
Text) 조직으로 불린다.

기존의 조직 위에 가상 조직이 생기는 셈이다.

하이퍼 텍스트는 원래 인터넷에서 문서 중간에 특정 키워드를 끼워둔
형식을 의미하는 용어다.

이 키워드를 누르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문자나 그래픽 파일이 나타난다.

따라서 하이퍼 텍스트가 뜻하는 것처럼 하이퍼 텍스트 조직은 웹(Web)을
축으로 한 기업 내부간 사이버 네트워크다.

현실조직 위에 가상조직이 걸쳐 있는 일종의 이중적 조직 구조인 셈이다.

종합상사도 하이퍼 텍스트 조직을 활용하고 있다.

삼성물산 철강본부 형강팀의 김웅 과장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석유공사가
석유 시추선을 발주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김 과장은 즉시 그룹웨어에 접속해 독일 지사에 설계를, 일본 지사에
철강과 원자재 조달을 의뢰했다.

자신은 수출입은행을 통해 신용제공이 가능한지를 타진했다.

이틀 뒤 각 지사에서 석유시추선 모델별 예상가격과 소요시기 등 필요한
정보를 전자메일로 보내 왔다.

김 과장은 보내온 정보를 조합,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가했다.

이처럼 삼성물산 영업직원은 자신이 처리할 업무에 도움이 될 팀원을 가상
공간에서 조달한다.

직급은 중요하지 않다.

전문성이 유일한 기준이다.

삼성물산이라는 현실의 조직 외에 사이버 공간에 하이퍼 텍스트라는 또
하나의 조직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이퍼 조직의 특징은 프로젝트에 따라 언제든지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기본 단위가 경직된 위계조직에서 인터넷을 통해 분자처럼 이동하는
개인으로 바뀌고 있다.

웹은 이미 거래의 매개수단을 넘어 기업경영의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현재 하이퍼텍스트 조직을 이용해 추진중인 프로젝트가
30여건에 이르고 있다.

삼성물산 전략기획팀 장성훈 부장은 "또 하나의 회사인 하이퍼텍스트
조직은 통제시스템이 없고 전산망을 통한 정보 접근이 무한대로 이뤄질 때
가능하다"며 "기업조직을 유연하고 수평적으로 만들어 업무 속도를 배가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분사와 아웃소싱을 통한 기업간 채널형태의 네트워크 조직도 자리잡아가고
있다.

LG전자는 올초 총무와 물류 부문을 분사했다.

사내 물적 관리와 복리후생 출장지원 기능을 담당하는 총무업무는 1백30여명
의 "휴먼 풀"이라는 독립기업이 담당한다.

원자재 조달과 완성품 배달업무 역시 1백명 규모의 "SLS"라는 기업이 맡고
있다.

삼성전자도 복리후생과 총무업무를 스텝스라는 분사기업이 처리한다.

기업내 핵심정보를 처리하는 전산과 연구개발을 아웃소싱하는 사례도 있다.

한솔전자의 경우 미국연구소와 공동으로 설립한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어에
기술개발을 맡기고 있다.

충남방적은 전산업무를 한국IBM에 위탁했다.

네트워크 조직의 장점은 시장 변화에 발빠른 대응이 가능하고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절감한 비용은 핵심역량 강화에 투입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본사는 두뇌로서 이제 핵심업무만 담당한다.

손발 역할은 모두 분사기업이나 아웃소싱대상 업체가 맡는다.

헤쳐모여식 조직은 그때그때 프로젝트에 따라 필요한 전문인력들을 모아
일을 맡기는 형태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들이 이 조직을 채택하고 있다.

개인은 한 부서나 팀에 영원히 몸담는 정태적 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역량에 따라 다이내믹하게 여러 프로젝트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사람과 조직을 구성하고 운용한다.

각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조직에는 자율성과 권한 책임이 주어진다.

일종의 사내 벤처기업이다.

이런 식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거대한 벤처기업의 연합체 같은 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삼성전관 임직원들은 사내 인터넷망에 자신의 경력과 능력에 관한 정보를
띄워 놓는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총 책임자는 사내 인터넷망에 접속, 이 인재 풀(Pool)
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인력을 뽑는다.

만약 아무도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임직원들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

LG경제연구소 김상욱 연구원은 "팀단위 조직은 이중명령체계로 인해 성과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회피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디지털 조직은 기능식
조직의 단점을 보완하고 상황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
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