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신탁(운용) 업계가 30년에 가까운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시련기를 겪고
있다.

지난 7월19일, 대우그룹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경영정상화 및 금융계의
중심확립이라는 당찬 계획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변해버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우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까지 한국 대한 현대 등 3대 투신은
작년까지의 누적적자를 일시에 해소하고 경영정상화를 이루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96년7월에 출범한 투신운용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98년12월부터 출범한 자산운용회사도 튼튼한 착근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화불단행일까, 좋은 일에는 시샘하는 것이 많아 잘못되는
경우가 있으며 나쁜 일은 여러개가 겹쳐서 일어난다는 것처럼 투신에 각종
악재가 겹쳐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해움의 첫단추는 7월26일에 꿰어졌다.

자금난에 빠진 대우그룹에 4조1천억원을 지원하라는 정부의 "강요"에 못이겨
투신(운용) 업계는 2조6천억원을 신규 지원했다.

대우그룹이 발행한 채권을 인수하는 형식이었다.

이는 곧 고객이 맡긴 돈으로 "투자부적격" 등급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투자부적격 등급의 채권은 편입이 금지돼 있는 MMF(머니마켓펀드)에도
대우그룹 채권을 편입시킴으로써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두번째 악재는 8월13일부터 시행된 대우그룹 채권이 편입된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환매제한이었다.

환매기간에 따라 1개월미만은 대우채권의 50%, 3개월미만은 80%,
6개월미만은 95%만을 찾을 수 있도록 제한함으로써 금융기관이 고객의 돈을
지급하지 않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 정부''를 내세우는 정부에서 무지막지한 군사정권에서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객들은 투신(운용)을 더이상 믿을 수 없다며 맡긴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공사채형 수익증권 잔액은 지난 7월18일 2백14조원이었으나 10월4일 현재
1백75조원으로 감소했다.

2개월반만에 무려 39조원(18.2%)이나 줄어든 것이다.

거의 매일 1조원씩 빠져나가면서 일부 투신(운용)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자금마련을 위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덤핑"으로 내다팔면서 회사채수익률
은 8%대에서 한때 10.82%까지 치솟았다.

대우채권분의 80%가 지급되기 시작하는 11월10일부터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11월대란설"이 확산될 정도였다.

다행히 정부의 다섯차례에 걸친 "금융시장안정대책"으로 회사채수익률이
연9.3%까지 다시 떨어졌다.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환매도 주춤거리고 있다.

최악의 국면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내쉴 수 있게 여겨졌다.

투신(운용)사들은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며 재생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대우그룹문제의 질곡을 훨훨 털고 다시 비상할 수 있기를 꿈꾸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다.

투신(운용)이 제시하는 재생전략의 화두는 "깨끗함(Clean)"이다.

고객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원인이 투자부적격 채권을 펀드에 편입한
것이었던 만큼 이제부터는 신용등급이 A급 이상의 우량채권만을 편입하는
것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대한투신은 "깨끗한 회사, 깨끗한 펀드(Clean Company, Clean Fund)"를
선언했다.

전펀드에 외부감사제도를 도입하고 펀드매니저의 윤리강령을 선포했다.

클린펀드 매각붐을 조성함으로써 윈윈코리아 펀드를 15조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투신도 "클린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대우채권이 편입된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50%이상을 주식형으로 전환하고,
클린공사채형 수익증권을 적극 판매한다는 복안이다.

"바이코리아펀드"로 주식형붐을 일으킨 현대투신도 주식형에서의 주도권을
공사채형으로 확산시킴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대우문제가 해결된 뒤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투신(운용) 업계는 덩치보다는
수익성이 우선되는 방향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IMF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몸집 불리기에 바빴으나 이제는 묵은 껍질을
깨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투신업계의 한결같은 각오다.

< 홍찬선 기자 hc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