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월가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아시아 경제 다시 보기"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외환 위기에 파묻힌 채 끝장난 것 같았던 아시아
국가들이 하나 둘 씩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분간은 절대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월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단언했던 일본 경제마저 뚜렷한 회복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반대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외환 통제 등 "자본 쇄국
정책"을 추구했던 말레이시아도 보란 듯이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반면 최근 에콰도르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등 중남미 경제는 아직도 혼미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요즘 월가에서는 매일이다시피 아시아 경제에 관한 크고 작은
심포지엄과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경우 지난달 27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를 불러
특별 강연을 들은 데 이어 30일부터 이틀동안은 한국의 이용근 금감위
부위원장과 태국 인도네시아의 경제 장관을 불러 "아시아 경제 구조조정
재조명" 세미나를 마련했다.

그런가 하면 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난달 30일 라틴 아메리카 경제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를 열면서 한국의 강봉균 재경부 장관을 특별 연사로 끼워넣었다.

월가의 세미나에서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은 빼놓을 수 없는 탐구 대상
1순위로 떠을랐다.

올해 7%의 성장이 예상되는 등 빠르게 경기를 되살린 가운데 대우그룹 정리,
제일은행 해외 매각 확정 등 부실 문제들을 잇달아 정면 돌파로 해결해내고
있는 것이 강력한 인상을 심어준 모양이다.

한국의 이런 "내용있는 경제 복원"은 본질적인 구조 조정을 회피한 채 정부
의 대규모 경기 부양조치에 의해 "반짝 회복"을 보이고 있는 일본, 자본
통제라는 일시적 대증요법에 의해 위기를 비껴간 말레이시아 등과 비교돼
더욱 후한 점수가 주어지고 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환란 3국"의 각료급 인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심포지엄
을 연데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인도네시아=실패, 태국=중간
단계, 한국=성공"으로 뚜렷이 구별되는 케이스를 동시에 조명해보기 위해서
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모델을 충실히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일부의 자조적 평가야 어찌 됐건
한국이 세계 금융 센터의 주된 화두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기회에 한국의 "구조 조정 모델"을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는 일이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