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몸이 닿자마자 마치 전기가 오른 듯 짜릿함을
느낀다. 이런 잠재된 에너지는 자석 같은 매력이면서 관계의 마력이다.
황홀경에 도달한 순간 이런 힘은 승강기처럼 인간을 실존의 꼭대기로
데려다 놓는다"

독일 작가 볼프강 라트가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장혜경 역, 끌리오,
1만원)에서 언급한 대목이다.

그는 사랑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그리스.로마부터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로코코 18세기 현대 등으로 나눠
시대별 사랑의 변천과정을 조명한다.

이 책은 사랑을 매개로 한 서양문화사라 할 만하다.

다양한 예술 장르를 포괄하는 저자의 식견과 간결하고 시적인 문체가
책읽는 맛을 더해준다.

사랑은 유사 이래 모든 문학예술의 주제였다.

그러나 저자는 "낭만적인 사랑"의 역사가 겨우 2백50년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18세기에 와서야 인간은 사랑을 결혼과 묶어 생각했고 평생 한 사람과의
행복을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의 인식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나.

고대에는 절제의 미덕이 최고로 꼽혔다.

플라톤은 욕망과 자기절제의 전범을 아테네인들의 동성애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중세에는 욕망을 억압하면서 방탕을 용인하는 이중성으로 바뀌었다.

승화된 오르가슴을 중시한 나머지 사랑의 황홀경에서 육체적 욕망을
추방해버렸다.

16세기 중반에는 인구밀집과 임금하락, 인플레이션으로 궁핍화가 진행되면서
여성의 고난이 시작됐다.

계몽주의자들이 활동한 16~17세기에는 마녀사냥이 절정을 이뤘다.

중세가 욕망의 억제로 요약된다면 르네상스 이후는 향락적 사랑과 세련된
기술의 시대다.

단테와 페트라르카를 거치면서 남녀의 진정한 파트너 관계로 승화된다.

일부일처제라는 결혼제도가 시민계급에 의해 정립된 것은 낭만주의 시대
였다.

18세기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고 협동하는 도덕과 결혼의 균형이 잡힌
시기다.

19세기는 사랑이 귀족의 특권에서 만인의 공동관심사로 변한다.

"보바리 부인" "적과흑" 등이 당시를 상징한다.

니체와 프로이트를 통해 성의 혁명이 이어진 20세기는 어떤가.

현대의 사랑관은 광속보다 빨리 변하고 있다.

온갖 딜레마가 개인과 사회를 억누르고 있다.

미국 부부의 50%가 결혼후 3년안에 이혼하는 실정이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동안만 함께하는 동반자"라는 개념이 사회학에서
대두될 정도다.

전문가들은 현대적 사랑의 딜레마가 과도한 기대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사랑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는 희망이 복잡한 사회구조 때문에 굴절되고
파편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인간의
영혼을 이끌어 올리는 힘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이야말로 영원한 구원의 샘물이자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