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의 사무총장 자리가 비어있는 지 한달이 훌쩍 넘었다.

국제무역 관련 현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는데 정작 이를 진두지휘
해야 할 수장이 없는 것이다.

금융위기에서 겨우 벗어난 세계는 한숨돌릴 틈도 없이 무역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미.유럽간 바나나분쟁에서부터 미.일간 철강분쟁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고 있다.

2000년 시작될 신라운드도 준비해야 한다.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WTO총회도 불과 몇개월 앞두고 있다.

중국을 새가족으로 맞아들이느냐 하는 숙제도 남아있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사무총장의 업무공백이 한달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은
레나토 루지에로 전 사무총장의 후임자 선출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WTO는 차기 사무총장을 뽑기 위해 여러차례 이사회를 열었으나 번번이
불발로 끝났다.

16일에도 모임을 가졌지만 소득은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 1년여간 경선에 나선 수파차이 파닛차팍 태국 부총리와 마이클 무어
뉴질랜드 전 총리간 경쟁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등 아시아 국가들은 수파차이 후보를 밀고
있다.

미국과 중남미 국가들은 무어 전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양분된 상태이다.

뉴라운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지역전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회원국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제3의 후보론 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여곡절끝에 새 총장이 선출된다하더라도 상당기간 후유증에 시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아시아국가들은 차기총장 선출과정에서 미국이 강력한 입김을 내세워
특정후보를 몰아내려고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공정성을 잃는다면 앞으로 전개될 새 무역라운드에서 더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태국은 미국이 무어 후보의 지지를 조건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에 유리한
차관조건과 수입할등 등을 제시하면서 "매표"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WTO는 그동안 투표가 아닌 회원국간 원만한 합의를 통한 문제해결을
전통으로 간직해왔다.

총장선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WTO의 전통이 "뒷거래설"이나 "음모설" 등으로 변질될 경우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요즘 국제사회의 화두가 단연 투명성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 김수찬 국제부 기자 ksc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