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서 장관까지"

연극배우 출신 손숙 신임 환경부장관의 인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다.

이번 개각에서도 그 무성하던 하마평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다가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드라마틱한 손장관의 인생역정은 지난 95년 KBS가 방영한 4부작 드라마
"배우수첩"에 고스란히 나타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손 장관의 어릴적 기억은 늘 쓰리다.

사업을 하던 부친이 일본을 들락거리다 영화배우 출신의 일본여자와 살림을
차리며 소식을 끊어버린 장면이 회상의 첫머리다.

끼니도 못때우며 1년에 11번의 제사를 치러내던 엄격한 어머니의 모습은
연극 "어머니"에서 리얼하게 그려졌다.

"연극 인생"은 풍문여고 2학년때 시작됐다.

집안에서 광대짓이라며 그렇게 말렸지만 생업이 되고 말았다.

고려대(사학과)에 입학해서는 더욱 집요해 졌다.

대학 3학년때는 학교를 내팽개치고 선배 연극배우 김성옥씨와 결혼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손장관은 이 시대 최고의 연극배우다.

그 자신이 스스로를 "뼛속까지 연극인"이라고 평한다.

"신의 아그네스" "위기의 여자" "담배피우는 여자", 그리고 20년동안 매년
공연키로 약속한 "어머니"...

손장관이 주연으로 등장한 연극들은 그대로 한국 여성 연극의 발자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1년이면 6~7개월을 연극에 매달리며 혼신을 태운다.

손장관은 연극외에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활동이 환경운동이다.

발령나는 날까지 임기 2년의 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다.

손장관이 일찌감치 DJ인맥의 대표적인 문화계 인사로 꼽히면서도 문화부
장관이 아닌 환경부장관으로 낙점된 직접적인 계기도 바로 환경운동
때문이다.

손장관은 누구에게 물어보든 "친근한" 인물로 묘사된다.

라디오 여성프로그램(여성시대)을 10년동안 진행하면서 보여준 한결같은
이미지는 "어머니"요 "큰 누나"다.

그래서 "이 시대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늘 따라 다닌다.

손장관은 눈물이 많다.

여성시대를 진행하다가도 특하면 운다.

오죽했으면 "수도꼭지"라는 별명도 붙어있다.

93년에 펴낸 자전적 수필집제목도 "울며 웃으며 함께 살기"로 붙였다.

그렇지만 손장관은 고집도 세다.

옳다고 생각하면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런 고집은 PK지역인 경남 밀양 출신이면서도 줄곧 DJ의 정치노선에 지지를
보내온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연극배우 손숙"이 아닌 "행정가 손 장관"의 앞길은 눈물과 고집만
으론 안되는 어려운 길이다.

동강댐 뉴라운드 등 녹녹치 않은 장애물이 곳곳에 널려 있다.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조직생활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한 환경부 내부의 걱정부터
잠재워야할 처지다.

더 이상은 "배우"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환경운동단체에서는 가뜩이나 목소리를 높일 게 뻔하다.

환경부 첫 여성장관인 황산성 전 장관은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내기도
했다.

손 장관은 이번엔 현실에서 ''위기의 여자''가 됐다.

< 김광현 기자 kk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