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은 지난 1년간 구조조정이란 태풍을 맞았다.

이 태풍은 "철밥통"이란 경영문화를 휩쓸어갔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경영스타일이 들어섰다.

민간기업처럼 수익성과 효율성을 내세우는 이른바 "책임경영"이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창사이래 최대 당기순이익(1조1천억원)을 기록했다.

포항제철은 창립이후 최대배당률(액면기준 25%)을 주주들에게 선물했다.

공기업간 경영혁신평가 순위가 매겨지면서 공기업 사무실엔 "개혁과 수익성"
이 화두로 떠올랐다.

30만 공기업 종사자들의 의식은 1백80도 달라졌다.

대량감원 임금삭감 등의 회오리 속에 경쟁의식이란 싹이 트기 시작했다.

경쟁상대는 다른 국내외 공기업만이 아니라 일반 기업체를 망라한다.

왜냐하면 민영화를 뼈대로 한 공기업 개혁방안은 공기업의 독과점을 경쟁
체제로 전환하는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쟁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공기업 사장부터
수위까지 변해야 한다고 이들 공기업 사람들은 말한다.

"지난 1년간 구조조정의 바람이 20,30년간 묵었던 때를 씻어내면서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A공기업 K임원)

도로공사는 최근 불친절 행위로 연간 3회 지적받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직원을 퇴출시키는 "고속도로 서비스헌장"을 만들었다.

옛날같으면 공기업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물론 청소되지 않은 찌꺼기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다.

정치권과 고위관료들에게 줄을 대려는 구태가 그런 것들이다.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밖의 평가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민간의 변화속도에 비해선 더디지만 금석지감을 느낄 정도로 경영문화가
바뀐것을 실감한다"(공기업과 접촉하는 S그룹 P상무)

외국에서도 한국 공기업의 개혁에 신뢰를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한국전력과 한국통신
등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에서 "투자 적격"으로 올렸다.

이런 가운데 "개혁=제2건국"을 기치로 현 정부는 공기업 등 공공부문
개혁에 가일층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기업 노동 금융 등 다른 부문에 비해 개혁의 정도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서다.

공기업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과거 정권과는 달리
현 정부는 제시한 스케줄대로 공기업 개혁을 반드시 실행할 것"이라며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공기업의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 작업이 강도높게
진행될 것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경영혁신 대상인 19개 공기업에서 올해 1만8백13명을 감원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감원규모 1만3천3백78명의 80.8%나 된다.

이들 공기업의 26개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감원대상은 1천2백18명이
늘어난다.

일각에선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한국경제호의 항로일지로 봐 공기업 민영화
스케줄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환란을 맞았던 지난 97년말 39억달러에 불과했던 가용외환보유고가 지금은
5백억달러이상으로 늘어났으니 외화유치 목적의 공기업 매각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국경제가 안심해도 좋을 만큼 안정을 되찾았는가는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조업가동률은 아직도 겨우 70%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는 좀처럼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실업자는 2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세계금융불안은 여전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추세도 강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 정부가 내세운 4대 개혁과제중 다소 미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공공부문의 개혁은 지금부터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공기업의 경영혁신과 민영화 등이 더 이상 미뤄지면 과거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영원한 숙제로 넘겨질수 있다는 지적이다.

< 정구학 기자 cg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