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초 홍콩에 갔을 때다.

호텔 로비에 연일 무전기를 든 사람들이 서성거려 무슨 사건이 생긴줄
알았다.

그들이 휴대폰을 지닌 일반인인줄 안 건 여행이 끝날 무렵이었다.

국내에서도 84년부터 차량전화, 88년부터 휴대전화 서비스가 개시됐지만
워낙 가입자가 적어 그렇게 많은사람들이 휴대폰을 사용한다는 걸 생각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국내의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88년 2만명, 92년 27만여명에 불과했다.

카폰안테나가 부와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져 가짜안테나를 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휴대폰 가입자는 그러나 PCS가 등장한 97년부터 급격히 증가, 최근엔
자그마치 1천5백만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전국민 휴대폰시대의 후유증은 끔찍하다.

여대생과 교수의 몸싸움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음에도 버스나 지하철의
"난데"족은 줄지 않고 있다.

남녀에 관계없이 식당에 앉자 마자 "요새 별일 없니. 나, 그저 그렇지"식의
전화를 계속하는가 하면 수업 도중에도 여기저기서 삐리릭거린다.

점잖은 사람들이 모인 세미나나 심퍼지엄에서조차 시작전 휴대폰을 꺼달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막무가내다.

휴대폰은 금세기 문명의 최대 이기중 하나다.

길이 막혀도 차에서 발만 구르던 때와 달리 기다려달라고 말할수 있는 건
행복이다.

차속에서 주식시황을 파악해 매매주문을 낸뒤 결과를 확인하고 인터넷 검색
과 팩스전송까지 할수 있는 건 꿈같은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물품도 잘못 사용하면 흉기가 된다.

정보통신부가 병원 공연장 도서관등 공공장소및 운전중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고 벨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선 건 휴대폰 공해가
사회악 수준에 이른 때문이다.

인천지법에서 재판도중 계속 따르릉 소리를 낸 방청객을 3일동안 감치토록
한데 대해 많은사람들이 "오죽했으면"내지 "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건
휴대폰 규제 필요성에 대한 일반의 공감대를 나타낸다.

휴대폰 사용은 사생활인만큼 자율에 맡기는게 바람직하지만 이번 감치조치를
계기로나마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 사용예절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