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살기 싫어하는 것은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공통된
것 같다.
미국의 경우 몇백ha 농장주의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농사짓기보다는 도시로
나가 바텐더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도 비슷하다.
몇년전 일본의 어느 농가를 방문했을 때 농장을 경영하는 한 분은 영농
후계자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에게 졸업후 농장을 물려받아 경영하도록
설득했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해 젊은이들이 농촌에 남기를 싫어하고 있다.
특히 농사짓다가는 장가들기도 힘들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을 만류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농촌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작년 2월 충북 청원의 시골
마을에서 만났던 한 청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원예전문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한살의 청년인 그는 대학에서 장미재배를
공부하면서 사귄 같은 학년의 아가씨와 함께 6백평의 크지 않은 온실에서
미니장미(Little Mabel)를 재배하여 높은 소득을 올렸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일이라 꼭 성공해야겠다는 각오가 대단했고
기술있는 젊은 남녀의 의기투합이 성공을 기약했다.
IMF사태로 꽃재배 농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젊은 커플이
걱정되어 얼마전에 연락해 보았다.
금년들어 미니장미 값이 크게 떨어지고 난방용 기름값도 많이 올라 경영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름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바꾸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꽃값도 다소 회복되어 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다고 들었다.
미니장미 공부를 인연으로 아름답게 엮어진 젊은 부부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영농기술로 무장한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에 뿌리를 내려 우리 농촌이
다시 한번 젊고 활기찬 삶터로 변모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