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관심속에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7일 재할인금리와
하루짜리 연방기금금리를 0.25%포인트 씩 인하했다.

지난 9월 이후 7주만에 3번째 금리를 내린 것이다.

이번 조치는 즉각 월가에 반영돼 이날 오전장에 크게 떨어졌던 주가를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번 FRB의 조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된 것이어서 그 반영폭이
그리 크지 못했다는 것이 시장전문가들의 평가다.

FRB는 이번 금리인하를 통해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에게 보다 싼 자금을 제공, 미국의 국내경기가 위축되지 않게
하는 동시에 미국으로 몰리는 돈을 미국외의 지역에 묶어두어 국제금융시장
을 함께 회복시키겠다는 의도다.

FRB가 소집한 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사람들의 촉각이 이번처럼 곤두선
적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워싱턴의 평가다.

이번 결정은 FRB가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금리를 내리면 내리는 대로 또 내리지 않으면 내리지 않는 대로 각각의
함축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결국 FRB는 금리를 내리는 쪽으로 결론을 냈고 이는 세계경제에 대한
FRB의 조심스러운 우려 내지 비관론을 반영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17일 오전까지도 일부 미국방송들은 FRB가 금리를 내리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금리를 인하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겉모양만 보면 세계경제에 대해 낙관론을 펼 수 있는 요인들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경제위기의 진원지인 아시아가 최악의 상황에서는 일단 벗어난 것
같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1천9백5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을 쏟아 붓기로 한
일본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간 세계경제의 "유일한 발전기"는 미국과 서유럽이었지만 이제
일본이라는 또 다른 발전기가 제대로 돌아가게 되면 세계경제 특히 아시아
경제에 보다 많은 원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다는 기대가 일고 있다.

아시아 러시아에 이어 세계경제를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몰아 넣을
수 있었던 브라질의 위기도 국제통화기금(IMF)의 4백20억달러 지원결정으로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으로 보인다.

전운이 감돌던 이라크 사태도 물밑으로 잠복했고 유가는 최저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낙관론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모니카 르윈스키 악몽에 시달리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달초 중간선거
승리이후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있고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무대에서
사라진 미국의회도 이제는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 또한 낙관론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FRB의 금리인하는 얼핏보면 단순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매우 냉혹한 것일 뿐 아니라 표피적
낙관론에 동의할 수 없다는 조심스러운 경종이었다는 것이 워싱턴의
분석이다.

"세계경제는 아직도 위기상황 하에 있으며 시장에는 아직도 "비정상적
긴장감(unusual strain)"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 FRB의 공식 발표다.

다우지수 10,000시대를 꿈꾸고 있는 월가의 공격적 투자자세(bullish)가
거품일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일부 재담가들은 이번 FRB의 금리인하가 위기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어적 성격을 띈 "선제공습(preemptive strike)"이었다고 촌평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번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회의는
채 20분도 지속되지 않았다.

이는 회의도중 금리인하에 대한 반론이나 논쟁도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뒤집어 해석하면 위원회 위원 대부분이 "세계경제가 아직 낙관하기에
이르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는 섣부른 것이라는 지적은 FED의
금리인하 이전 여기저기서 제기된 것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뉴욕 타임즈의 16일자 경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시아의 주가가 상승하고 환율이 안정되는 등 표면적 안정을 되찾고
있으나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자기만족과
보호주의에 빠질 우려가 크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