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두만강"은 독립군으로 출정한 남편을 찾아 만주까지 갔다가
전사소식을 듣고 두만강에 투신자살한 여인의 한맺힌 사연을 담은 노래다.

김정구의 친구였던 이시우가 무명시절에 작곡한 곡이다.

이시우에게 이 곡의 출반을 부탁받은 김정구는 1938년 오케이레코드사에서
판을 낸다.

그러나 당시에는 크게 히트하지 못했다.

일제말에는 조선인의 민족성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발매금지까지 당했다.

이 노래가 만인의 애창곡이 된 것은 6.25후 부터다.

특히 60년대에 시작된 장수 반공 라디오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테마곡이 돼 더욱 유명해졌다.

김정구는 1916년 원산의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다.

형 용환은 가수이자 작곡가였다.

누이 안라는 무사시노 음악학교 출신의 소프라노였고 동생 정환도
피아노를 전공했다.

누이의 영향때문인지 원산기독교청년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한때 작곡가
이흥렬이 이끄는 원산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주자와 혼성합창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등 클래식 음악에 뜻을 두었다.

그가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서울에 온 것은 1935년이다.

가수의 길에 들어선 그는 코믹송을 부르는 만요가수로 두각을 나타낸다.

"왕서방 연서" "총각 진정서" "바다의 교향시"를 부를 때는 우스꽝스런
분장과 특유의 어투, 경쾌한 몸짓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김정구, 그가 무대에 서면 넓은 무대가 어느새
그의 몸보다 작아진다"는 언론의 절찬도 받았다.

일본 순회공연때는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의 가수로서의 일생은 어느 누구보다 화려했다.

75년에는 회갑기념 쇼를 가졌다.

80년에는 문화훈장 "보관장"도 받았다.

남북예술단 교환공연이 열린 85년에는 꿈에도 그리던 평양에 가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구성지게 불렀다.

지난 93년부터 자식들이 사는 미국에 가 있던 그가 엊그제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운 고향땅 원산에 묻어달라"는 유언만 남기고.

고복수에서 남인수 김정구로 이어지는 해방전 인기가수세대가 조용히 막을
내린 셈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